가시가 선물로 고백되면 응답을 받은 것이다.(마 16:13-20)


예수님이 누구신가?

본문은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 생각대로 말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상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죽은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나 예레미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 4:5절을 보면, 마지막 심판 전에 하나님이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야가 오시기 전의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외경(마카비)에, 심판 전에 예레미야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예레미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떤 외경(에스드라2서)에는 이사야나 에스라와 같은 선지자가 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전승에 따라서, 모세나 이사야, 에스라와 같은 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말들입니까? 자기의 생각입니다.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생각대로 예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그러자 베드로가 아주 특별하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주님에 대한 고백이 살아있는가?


그러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축복하시면서 반석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18절을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 반석 위에”라는 말은 베드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했던 고백입니다. 그 반석같은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이 고백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를 헬라어로는, ‘쉬 에이 호 크리스토스’라고 합니다. 여기서 헬라어 ‘호’는 영어의 정관사 ‘the’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고백을 영어로 번역하면, “You are the Christ!”가 된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로 그 그리스도, 즉 오직 유일하신 구세주”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나온 장소가 어디입니까? 13절을 보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엄청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해방자이며, 엄청난 권능을 가진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장소가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당시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와 헤롯 대황의 아들이었던 분봉왕 ‘헤롯 빌립’의 이름을 합친 것입니다. ‘가이사, 즉 황제’가 헤롯 빌립에게 이 땅을 주어 다스리게 했습니다. 헤롯 빌립이 도시를 확장하고 이름을 ‘가이사랴 빌립보’로 지으면서, 가이사의 신전을 세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로마의 황제가 전 세계를 다스리는 신적인 존재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식이 팽배했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했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고백 위에서 신앙하고, 이 고백 위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그 어떤 것에서는 구원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재물이든지, 권세이든지, 지식이든지, 사람이든지, 거기에서 구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아들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들여다보게 하신 은혜라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이 육신적으로 알게 된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진리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제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것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부정적인 영을 받으면 안 됩니다. 속이고 미워하고 다투게 하는 마귀의 영을 받으면 안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 여러분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의 축복이지, 다른 게 축복이 아닙니다. 진리를 알면 행복이고, 모르면 불행입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불행한 것입니까?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모릅니다. 자기의 인생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망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붙잡아야 생명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확실하게 믿어져야 합니다.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대 앞에서, 누가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까? 19절을 보십시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게 될 때, 인생이 행복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선교사인 C.T 스터드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그마저도 곧 지나가리라.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일만 남으리라.” 여러분에게 이런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을 반석으로 주님과 신실한 관계를 이어가야 합니다. 신실한 관계란 친밀하면서도 순종하는 관계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습니까? 사람들의 생각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그리스도, 내가 바라보고 싶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그리스도를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인생의 문제가 다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문제가 풀려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문제, 기도 응답의 문제, 고난의 신비와 같은 것들이 다 풀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약 1: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신 대로 응답이 올 거라고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하는 대로 다 응답을 받았습니까? 혹은 받고 있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마 7장 말씀을 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구하는 대로 주시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신실함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 신실함을 의심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이 “가시가 선물로 인정되면 응답을 받은 것이다”입니다. 고난이나 환난이 가시로 여겨지면,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요. 여러분의 질병이나 실패가 가시로 여겨지면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하십시요. 그런데 그것이 더이상 내 인생의 가시가 아니라, 비록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지만, 내 인생의 가시가 아니라 선물이라고 여겨지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고백하십시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요. 이게 진리입니다.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서,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로지 주님을 의지하면서, 여러분의 생애를 믿음으로 살아내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