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감사가 뿌리내리면, 인생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레 23:15-22)


생명을 주심에 감사하라.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 다 “생명, 추수”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은 생명을 구원받은 날이고, 무교절 기간에 있는 초실절은 가나안에서 농사짓고 첫 열매를 추수하는 날입니다. 맥추절도 밀 추수와 관계가 있고, 수장절도 추수를 끝내고 드리는 기쁨의 절기입니다. 이런 절기들을 통해서, 전하려는 정신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있고, 모든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관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해서 찬송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을에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기 않습니까? 오늘날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이 미국으로 넘어간 청교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원래 영국에 청교도들이 있었는데, “영국 국교회”라고 불리는 성공회와 종교적인 색깔이 맞이 않았습니다. 국교도들이 청교도 신앙을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하나님만 잘 섬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간 곳이 네덜란드입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도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섬길 수 있는 신앙을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아가지고 배를 하나 샀습니다. 그것도 큰 배가 아니었습니다.

200-30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배를 사서, 거기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몸을 실었습니다. 그 배가 “메이플라워호”입니다. 그 배를 타고 불모지인 미국 땅에 도착했는데, 마침 겨울이었습니다. 한 겨울에 집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양식도 없어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102명 중에서 44명이 사망하고, 60명도 안 되는 사람만 살았습니다. 봄이 되어서도 양식이 없어서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 본토 원주민들이 불쌍히 여겨서 옥수수 알갱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옥수수 농사를 지어서 살게 됩니다.

먹고 살 양식이 다 떨어진 사람들에게 곡식 알갱이가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 추수의 기쁨과 감사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자기들이 먹을 양식이 넘치고 남아서 추수하는 예물로 감사드린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지켜주신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양식을 추수하게 하신 것이 감사했기 때문에 드린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60년대까지는 거의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6월에 보리를 추수하면, 한 숨을 넘깁니다. 그때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입니다. 먹을 양식이 먹고도 남을 것 같아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중에도 먼저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먹을 것도 부족한데 드릴 수가 있습니까?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으니까 드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으니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도 있고, 의무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누리는 모든 것은 다 그냥 받은 것입니다. 은혜로 얻어서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쓰임받는다.


생각해 보십시요. 똑똑한 사람이 많은 것을 누리는 게 아닙니다. 은혜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것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목회자들을 보면, 똑똑한 사람이 많이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많이 쓰임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제일 똑똑하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서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까? 죄송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지만, 은혜로 그 자리에서 쓰임받는 것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덜 똑똑한데, 더 많이 쓰임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결국에는 영생이냐 심판이냐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필립 멜랑히톤이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란 은혜를 기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열심으로 이뤘다고 생각하면, 심판받은 북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은혜를 아는 사람이 쓰임받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이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전도하는 현장으로 파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 10:8절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권능을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어로 말하면, “도레안 엘라베테 도레안 도테”입니다. ‘도레안’이 ‘거저’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 영생의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거기에 여러분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을 다 갚으셨기 때문에,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엡 2:8절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냥 믿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은혜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구원받은 것을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엡 2: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가 일상이 되게 하라.


그러니까 성도란 매일 매순간 감사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감사가 뿌리내리면, 인생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사란, 결국 은혜를 아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매일 매순간 은혜가 자기를 인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매일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환난이나 시련을 만나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난과 시련 중에도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감사가 뿌리내리게 하는 삶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이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이 없는 삶에는 다른 사람들이 참견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슬픔이란 “고통과 아픔과 고뇌와 죽음의 투쟁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슬픔”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오, 그리스도인이여! 이 세상의 헛된 것을 구하지 마라. 오직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라는 말씀 앞에 살고 죽어라. 그것은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능가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은혜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앞서 마 10장에서 “거저 받았으니”라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 ‘엘라베테’가 완료형입니다. 완료형이란 한 번 받은 것으로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처음 은혜 받은 때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공급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성도는 매일 매순간 받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맥추절에 드리는 제물 중에서 특이한 것이 나옵니다. 17절을 보면, 떡을 요제로 드리라고 하면서, “누룩을 넣어서” 발효한 떡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제사를 드릴 때 누룩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누룩은 죄나 부정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무교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맥추절에는 예외적으로 누룩을 넣은 떡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무교병은 매일 먹는 식사가 아니라, 특별한 제사 때만 드리는 떡입니다. 그러니까 무교절에 무교병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헌신과 감사를 표현합니다. 반면에 유교병은 매일 먹는 일반적인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유교병을 드린다는 것은 매일의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계속되는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흘러가게 하라.


내가 땀 흘리고 노력해서 추수한 것처럼 보여도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양식을 주시고 힘을 주신 은혜로 추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일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자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은혜인 줄을 몰라도, 성도는 그게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22절을 보면,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들을 위해서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받았으니기 은혜로 흘러가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도레안’, 아무 대가 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도레안’, 어떤 결과나 대가를 염두에 두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 밖에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은혜를 기억하면서 살아 보십시요. 매일이 은혜입니다. 날마다 감사로 살아 보십시요. 웬만한 환난이나 시련이 여러분을 흔들지 못합니다. 하루 하루 은혜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실 역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뜻 밖의 은혜로 인생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풀어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