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항복하지 말고 말씀에 항복하라(계 2:8-11)


서머나 교회에는 크게 두 가지 말씀이 핵심을 이루는데, 그것이 9-10절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계 2:9-10) 살아있는 참 교회의 첫째 표지가 사랑이라면 둘째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은 자연히 붙어 다닌다. 주님을 사랑하면 세상으로부터 환난과 시련을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의 교회였다. 그리고 그들은 신앙을 위협하는 모든 박해와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세상에서 인정받기보다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로 끝까지 남기를 기뻐했다. 서머나 교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박해의 현장에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교회였던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 기도의 제목을 삼으려고 한다.

1. 고난이 필연이라고 해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해서 계시하실 때, 나타내는 표현이 다르다고 했다. 서머나 교회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8절,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순교할 만한 박해의 상황에 처한 성도들에게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며 마지막”으로 계시하셨다. 이는 처음과 끝을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니까 창조도 심판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이고, 생명도 죽음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그 주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셨다고 했다. 죽어서 사라진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이 교회와 함께 계시다. 교회를 위하신다. 교회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니까 담대하라는 것이다. 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기독교는 무덤에서 끝난 종교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무덤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기독교는 부활의 능력이 실재하는 종교이다. 그러니까 성도의 삶이 무덤에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어도 끝난 것이 아니다. 실패하고 무너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이 어둠 속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되어도 끝난 것이 아니다. 반드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우리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고통과 어려움에서 이겨내게 해 주실 것이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제임스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비극은 단지 일시적이며 부분적일 뿐이고, 망가짐과 파국은 완전한 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고난이 필연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좌절할 이유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넘어서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 1:6을 보면,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는 잠깐의 근심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신자에게 죽음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고난도 영원하지 않다. 죽음을 이기게 하신 예수님이 고난도 이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감정이 아니라 믿음에 사로잡혀야 한다.

세상과 물질적 부요함을 추구하면서 영적인 부요함을 동시에 추구하기란 힘들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고 하셨다. 성도가 영적인 부요함을 추구할 때, 물질적 부요함이 따라올 수는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시려고 하는 것이니까 축복일 수 있다. 그것은 재물의 은사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시려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부요함을 추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부요함을 추구하면서 영성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순위가 바뀌면, 영성이 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서머나 교회는 영적인 부요함을 택했는데, 그것이 물질적인 가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네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2:9)고 칭찬하셨다. 여기서 “실상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는 ‘그러나’라는 뜻이다. 그들은 환난과 궁핍함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부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가난했지만, 믿음과 사랑은 부요했다는 것이다.

주님은 그런 교회를 향해 위로하시면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2:10) 이미 환난과 궁핍으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무엇이 예고되고 있나? “장차 받을 고난”이 예고되어 있다. 완전히 설상가상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파도처럼, 고난 뒤에 또 고난이 있음을 주님께서 예고하신 것이다.

주님은 고난을 감추지 않으신다.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고난이 따라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 그런가? 고난을 준비하게 하시고, 고난을 이기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다. “너희에게 고난이 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아라. 시험을 받을 것이다.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존재가 바로 나 주 예수이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삶과 죽음이 주님의 손에 있고, 고난과 시련도 주님의 손에 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고난을 감추지 않으신다. 오히려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래서 그것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려고 한다. 예수님은 요 16:33에서도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한걸음 더 나가게 한다. “담대하라”는 것이다. 두려움이나 염려와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면서 담대하라는 것이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말씀에 사로잡히라는 것이다. 성도란 감정이 아니라 말씀에 사로잡혀서, 믿음에 사로잡혀서 승리해야 한다.

3. 장차 있을 영광을 기대하면서 이겨내야 한다.

성도란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 경우에 자기의 힘으로 이겨내라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주님의 의지하는 신앙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이겨내라는 것일까? “죽도록 충성하는” 신앙을 가지고 이겨내라는 것이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10절)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죽도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크리 다나투’는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는 뜻이다. 그리고 “네가... 충성하라”는 말이 헬라어로 ‘기누 피스토스’인데,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라’는 뜻이다.

성도란 그런 모든 세상의 박해로부터 소망을 보아야 한다. 부활 생명의 소망,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소망을 보아야 한다. 마른 나무에서 생명을 일으키시는 기적의 소망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꺾이지 않는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광을 본다. 계 2:11절에서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둘째 사망의 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기는 자는 첫번 육신의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 생명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둘째 사망이 사라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영원한 소망, 살아있는 소망으로 승리하셔야 한다.

오늘날에도 고난은 참교회의 표지다. 그러나 고난받은 서머나 교회에 주신 주님의 위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님은 고난을 이겨내라고 하셨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하셨다. 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주님을 신앙하는데 죽기까지 신실하면, 영원히 비교할 수 없는 생명과 존귀와 영광으로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고난을 견디는 자에게는 풍성한 상급을 약속하셨다. 이 믿음으로 장차 있을 영광과 기쁨을 기대하면서 인내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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