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교인 수련회가 은혜 가운데 마쳐졌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다스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면, 그 어떤 것도 허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막 7:15-16) 이 말씀을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묵상해 보십시요.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허물어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들어오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허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결국 답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빼어난 지식이나 특별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어도, 기도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기도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기도가 없다면 ‘믿음의 역사’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아이의 병을 고치려고 할 때 정말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말이 ‘프로슈케’라는 헬라어인데, 조금 복잡한 의미를 가지는 말입니다. ‘프로슈케’라고 하면 자기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과 같은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럴 경우에는 '데에시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슈케’라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조절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로슈케’라고 하면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지거나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정말로 부족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기를 조절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했는데, 마음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적어도 하루에 세 번씩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과 닮아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지하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마음과 닮아 있지도 못했습니다. 기도가 능력이 있으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삶에 능력이 있으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져야 합니다. 결국 내 안에서 ‘나‘라는 자기가 부정되고,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주인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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