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라! (눅 15:17-24)
- 신애교회
- 6월 10일
- 4분 분량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어떤 재능을 주셨든지 간에 거기에는 목적이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목적과 의미에서 벗어 횡령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탕자는 목적과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다 없어졌습니다. 횡령하면서 다 없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큰 흉년까지 만나서 이제 궁핍하게 됐습니다. 탕자의 이게 두 번째 잘못입니다. 탕자의 세 번째 잘못은 말씀을 어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눅 15:15절)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어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이 사람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살고 돼지 치는 사람이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레위기 정결법을 보면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고 먹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 랍비들 사이에 있는 격문에서 보면 ‘돼지를 사육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은 돼지를 사육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한 50만 명 정도 살았고 나머지 한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디아스포라되어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타국에 살면서 회당 중심으로 집을 짓고 가게도 지으면서 항상 말씀에 붙어 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탕자는 말씀을 배우면서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회당 중심으로 살며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말씀 배우고 유대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어야 되는데 이방인과 붙어 살았다는 것입니다.
( 15:15절)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살았다
이 사람이 말씀 떠나서 회당 떠나서 살았다는 것은 말씀을 떠나 말씀을 어기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막 살다 보니까 결국 인생에 배신이 들어옵니다. 자신이 믿었던 것이 행복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었던 세상이 내게 행복을 주고 만족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세상은 그에게 기쁨을 주지 않고 오히려 괴로움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빼앗기고 궁핍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습은 연약해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범죄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믿었던 거에 배신당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그 지식에 배신 당합니다. 소유하고 있던 재물에도 배신을 당합니다. 또한 믿었던 사람에게도 배신 당합니다. 이 세상이 그렇습니다. 탕자처럼 살아간다면 받드시 거기에 배신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십니다. 유산을 요구하는데도 그냥 말없이 재산을 내어줍니다.
(눅 15: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느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췄다.
아버지는 아들한테 상처를 받았을지라도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들과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서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입을 한 번 맞춘 것이 아니라 헬라어 카테필레센, 입을 여러 번 맞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끝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인데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 목사님이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씀을 저는 좋아합니다. 우리 좋았다 나빴다 좋았다 사랑이 변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랑으로 살고 있지만 난 아직까지는 사랑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안 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광야시대를 떠올려보면 하나님이 하루하루 매일같이 양식을 주셨다는 것이 경이로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 열심히 사랑할 때 하나님이 만나러 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할 때도 하나님 만나를 주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그 우상들을 숭배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만나를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만 만나를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대항할 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변함없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니까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의심하면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믿으며 살지만 영적 사춘기가 있고 그때는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괜히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면 돌아오지를 못합니다. 그때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야지 여러분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탕자는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니고 돌아오는 중인데 아버지가 달려와서 끌어안고 돌아온 자가 되게 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되는 마지막 대목은 탕자가 인생이 무너진 상태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빠져 들어가는냐입니다. 자기의 무너진 인생으로 빠져들어가면 절망하며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자기 인생에 빠져들어가질 않습니다. 자기 안에 소망을, 자기 안의 생명을 혹은 자기 안의 사랑을 계속 불어 넣어 주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 사랑은 변하지 않으니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나를 내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들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으니 품꾼이라도 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때로는 쓰러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목표하고 의도했던 거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내 마음과 내 뜻대로 안 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정말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보는 것을 바꾸라. 인생의 절망을 계속 바라볼때는 진짜 소망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소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는, 여러분에게 뭔가 새로운 지식과 능력을 불어 넣어 주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마음을 돌이켜서 이 탕자가 마음을 돌이켜서 아버지께로 가는데 아직도 거리는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 살아가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 고난의 현실들, 삶의 무게들 이런 거에 붙잡혀서 살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라고 하신 말씀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를 기억하십시오.
(고전 10:13절)
또 시험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을 내셔서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무리 힘겨운게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시험을 주실 때 하나님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허락하신다는 거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로서는 안되고 하나님이 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다 내어주셨다는 사실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탕자가 바라본 것을 여러분도 바라보십시오. 낙심과 절망의 때를 통과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보십시오. 탕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눅15:20절)
이제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그가 마음을 돌이켜서 아버지께로 가리라.
I will arise! 난 일어나겠어. 나 지금 내 실망의 자리에서, 실패의 자리에서 지금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겠어. 내가 지금 내 수치감과 모멸의 자리에서 일어나겠어. 내가 지금 나 배신감의 자리에서 일어나겠어. 그리고 가겠다. I will arise and go! 나는 나의 아버지께로 가겠습니다. 아버지께로 늘 언제나 가까이 다가가기를 사모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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