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열매가 되게 하라(창 21:8-21)
성도는 신앙생활에서 눈물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 눈물이 씨앗이 되고 거름이 되어서 훌륭한 열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이 있다면 그것이 열매로 되돌아 올 것이다. 가정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 있으면, 그것이 열매로 돌아올 것이다. 시 126: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다. 기업을 위해서, 비전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 있으면 반드시 소망의 열매가 있을 것이다. 특히 교회를 위해서 흘린 눈물이 있으면 그것이 부흥의 열매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애굽 여인 하갈이 자기 아들 이스마엘을 위해서 운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위로해 주고,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샘물을 찾게 하신다. 성경에는 이렇게 눈물로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눈물이 괴로움과 상처로 끝나지 않고, 열매가 되는 까닭이 있다. 눈물이 열매가 되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1. 은혜를 구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다.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좋은 때에 그렇게 하신다. 그러면 언약 안에 있는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하겠나? 그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다가 쫓겨나는 이야기이다. 본문에는 아주 기가막힌 수사학적 표현이 담겨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데, 그 보호하심이 흘러가는 방향이 있다.
이스마엘이 하갈의 아들로 불려질 때는 “내어 쫓으라, 그의 기업은 없다”로 대하신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아이’로 불릴 때, 위태할 때, 무기력하게 힘을 잃어버렸을 때는 전혀 다르게 대하신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고, 눈을 뜨게 하시고, 물을 먹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까지 한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서 하나님은 더 연약한 어린 아이 이삭을 보호하셨다. 그러다가 이스마엘이 어린 아이의 상태로 가니까 이스마엘을 보호하신다. 이것이 바로 창 21장에서 드러내려는 또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법, 생명을 얻는 법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로 살라는 것이다.
2. 언약이 있기 때문에 눈물이 열매가 된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셨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본문은 그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분명한 표현들을 남겨놓았다. 본문에서 우는 사람, 통곡하는 사람은 하갈이다. 16절을 보면, 이스마엘이 죽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통곡하는 하갈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17절에서 하나님은 하갈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17절을 보면, 우는 사람은 하갈인데,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아이의 소리라고 하셨다. 왜 그런가? 하갈이 약속의 사람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약속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했던 언약대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로 하여금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지금, 그 약속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시다. 그렇다면, 성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신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이유가 나온다. 신 8: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러면서 하시는 유명한 말씀이 무엇이었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는 것이다.
3.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다.
눈물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포기하게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고 의지하게 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완전히 수용하도록 이끌어준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존귀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인다. 수용성이 좋다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하든지, 부모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에게 다 맡기고 산다. 완전히 사로잡혀서 사니까, 모든 것을 부모가 채워주게 되어 있다. 그렇게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면 좋은 것으로 채워지게 되어 있다.
하갈의 경우를 보라. 그녀가 자기의 힘으로 아들을 지키려고 했을 때는, 샘물을 찾지 못했다. 아들에게 필요한 생명의 물을 공급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니까 어떻게 되었나? 19절,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없던 샘물을 만들어 내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하갈로 하여금 샘물을 찾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책임지시시니까 그녀의 눈이 밝아졌다. 보지 못하던 세계를 보고, 알지 못하던 지혜를 갖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책임을 맡겨드리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필요한 생명의 물을 찾아 마시게 하신 것이다. 성도란 그렇게 하나님께 완전히 자기를 맡기고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최고 관심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우리를 품어주신다.
진심으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의 인격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 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이 나의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세상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주인이 된 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 되신 주님의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열매가 되어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것을 여러분 생애, 믿음의 영원한 지표로 삼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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