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은혜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창 33:12-20)
야곱이 변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에서의 400명 군대가 자기를 향해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두려움에 빠져 있던 야곱이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기도한 결과로 변하게 되었다.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되었고, 브니엘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평화를 누렸다. 창 33장은 그렇게 변화된 야곱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된 야곱의 인격과 신앙, 변화된 야곱의 인생목적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살펴 보려고 한다. 한 마디로 야곱은 은혜 이후의 삶으로 나아간다. 은혜 이후에 야곱의 삶이 어떻게 나가고 있는가?
1. 하나님의 은혜는 야곱의 인격을 변화시키셨다.
야곱은 절대적인 인생의 위기 앞에서 천사의 다리를 잡고 “울면서 그에게 간구”했다. 당당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 울면서 간구한 것이다. 펑펑 울면서 간절히 은혜를 구했던 것이다. 그가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호 12:4절,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그렇게 울며 간구하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만나” 주셨다.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거절하지 못하는 기도가 있는데, 그것은 눈물의 기도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물로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해 간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환경에서라도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눈물로 기도하면 문제의 90%는 이미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이 벧엘에서 그를 만나던 것처럼” 기도하는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자기의 자아가 부서져 나가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기 시작했다. 은혜를 체험하니까 모든 것이 맡겨졌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니까 야곱의 인격이 변화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인격이 달라지는데, 그 인격이 겸손해진다. 창 33장부터 야곱의 인격이 달라진다.
환도뼈가 부러진 이후, 야곱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야곱은 겸손해진다. 에서를 만나러 나갈 때, 땅에 일곱 번이나 엎드리면서 나아간다. 생존을 위해서 비굴해진 것이 아니다. ‘제가 형님을 속였습니다. 제가 형님의 복을 가로 챈 죄인입니다. 당신을 향해 죽어져야 하고, 당신의 종이 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속죄하는 겸손의 표현이었다.
10절에서는 야곱이 형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살기 위해서 아부성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속이는 사람 눈에는 속이는 사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야곱이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는 말은, 창 32장에 나오는 브니엘과 연결되어 있는 고백이다. 창 32장에서 야곱은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 야곱은 그 내면의 체험을 통해서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에서에게 “형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얼굴이 담겨지니까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보여진 것이다.
은혜를 받으니까 은혜로 세상이 보여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은혜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에게서 허물을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 안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 내 안에 거짓과 속임과 악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들보나 허물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인격이 달라지고 성품이 달라진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야곱의 신앙을 변화시키셨다.
야곱은 이후에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장막을 치고, 거기서 제단을 쌓은 뒤에 이름을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지었다. 창 33:20절 말씀이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너무나도 감격적인 장면이다. 그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건강을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주어졌고, 그가 탕자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온 감격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단을 쌓고 단의 이름으로 지은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은 천사와 힘겨루기 끝에 얻은 야곱의 새로운 이름이다. 그러니까 야곱의 고백,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과 같다. 왜냐하면 제단의 이름을 지은 사람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야곱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대목이 너무 중요하다. 야곱은 자기 인생에서 최초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야곱 자신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그는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았지만, 그것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았다. 야곱은 에서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 온전하게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다. 야곱은 하나님을 부를 때, 항상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자기의 하나님이 아니다. 자기의 신앙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신앙이고 아버지의 신앙이다.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이렇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내 신앙’이 아니다. 아내의 신앙이고 남편의 신앙이다. 아버지의 신앙이고 어머니의 신앙이다.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의 신앙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이다. ‘자기의 신앙’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고,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를 다니는 것이 힘들고, 자기 신앙을 세우는 것이 힘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서 그런 야곱의 신앙을 바꾸어 놓으셨다. 야곱은 자기 생애의 전반부에는 하나님과 흥정을 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인생의 가치를 높이려고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가치를 내 힘으로 높이려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만큼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기 원할 때,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수준만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은혜는 야곱의 인생목적을 변화시키셨다.
야곱의 신앙이 변화되니까, 그 인생의 목적도 은혜를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인생의 목적도 달라진다. 12절에 에서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여기서 “동행하리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레네게데카’인데, ‘키를 잡다, 통치하다, 앞장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에서는 야곱의 앞잡이(길잡이)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에서가 길잡이가 되어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야 할 것인가?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지만, 야곱은 에서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야곱은 에서의 친절한 제안을 거절한다. 칼빈이나 폰라드와 같은 사람들은 야곱이 에서를 신뢰하지 못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언약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야곱이 에서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에서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의 길을 포기고 하나님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에서는 에서의 길이 있고, 야곱은 야곱의 길이 있다. 야곱도 원래는 에서의 길을 가던 사람이었다. 에서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똑같이 자기의 힘으로 물질과 명예의 복을 얻기 위해서 경쟁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기의 힘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앙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신앙이 달라지니까 인생의 목적이 달라졌다. 성공과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삶의 길이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진다. 재물을 섬기고 자신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된다. 재물과 세상의 재미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 된다.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내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것이 은혜받은 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야곱의 여정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가나안을 향해야 한다. 그것이 처음 출발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 곧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거기서 자신을 축복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통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야곱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물질을 통제하고, 가족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통제,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려 하고 있다. 약속을 붙잡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제에 우리를 맡기는 것이다.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승리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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