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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씨앗은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당신의 씨앗은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창 22:15-24)


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이 먼저 깊은 아픔을 주시지 않고서 어떤 사람을 크게 복 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다가도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자기가 완전히 죽고, 삶의 터전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포기하면 안 된다. 위기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더 깊이 무릎을 꿇어야 하며, 감정의 고통이 찾아오면 우리는 더욱 신실하게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 오스 힐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어두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들어오시지 못할 만큼 어두운 동굴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 50:10절의 말씀을 고백으로 삼아 승리해야 한다.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 이기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불가능은 없다. 오늘 우리는 삶의 모든 환경을 좋은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성도란 충성과 인내를 가지고 이런 믿음, 이런 마음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믿음을 계속해서 유지해갈 수 있을까? 무엇이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이 될 수 있을까?


1. 그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을 앞세워야 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굉장히 사랑했다. 2절에서 “사랑하는 독자”라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 ‘예히드카’는 ‘야히드’에서 시작된 단어이다. ‘야히드’는 ‘독자’라는 뜻도 있고, ‘유일한 것, 나의 귀중한 생명’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자기의 생명처럼 귀중하게 사랑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이삭을 사랑하지 못했다면, 하나님보다 이삭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믿음보다 이삭을 사랑하는 마음을 앞세웠다면, 이삭에게 집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보다 하나님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보다 하나님께 더 집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고 계신가? 아브라함이 그랬다는 말씀이다. 우리 믿음이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찰스 스윈돌은 자신의 설교에서 우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상숭배를 정의하자면 이 땅의 것을 신으로 둔갑시켜 창조의 하나님 대신 그것을 숭배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곧 우리의 우상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깨어 있어서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한다. 호 6장에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고 시작한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라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2. 내 인생의 씨앗에 좋은 것이 담기도록 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삶이 완성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의 삶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 가지 약속을 하신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후손들을 향한 약속이다. 17절과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가 번성하게 될 것, 영광을 보게 될 것,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여러분, 아브라함의 씨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복을 열매로 받게 되는 것이겠나? 18절을 후반부를 보면,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준행하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솨마타’인데, 이 단어가 ‘샤마’에서 나온 말이다. ‘샤마’라고 하면 단순히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단어는 ‘들은 것을 이해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을 듣고 순종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잘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순종으로 응답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종하는 믿음이 아브라함의 씨앗 속에 담겨 있었다.


무엇이 담겨진 씨앗이냐가 중요하다. 독이 담겨진 독버섯의 씨앗은 결국에 생명을 해롭게 하는 열매를 낸다. 여러분 안에는 어떤 씨앗이 담겨져 있으신가? 좋은 믿음의 씨앗, 순종하는 믿음의 씨앗, 건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열매의 씨앗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을 씨앗 안에 담고 있으면, 교회를 10년 다니고 20년 다녔어도 오히려 교회를 깨뜨리고 성령을 훼방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열매로 남기고, 어떤 영향력을 심어놓고 하나님께로 가실 것인가?


떠나간 자리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진짜 떠나간 자리가 아름다우려면,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씨앗 안에는 좋은 믿음, 순종하는 믿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담겨지게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아름다운 영적인 삶을 살고, 위대한 영적인 유산을 남기시기 바란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야 한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실현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애쓰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나홀의 족보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리브가의 이름이 등장하고, 23장으로 가서는 사라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라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다가, 믿는 사람들의 어머니가 될 유산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간다. 그러나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받으시고, 그녀를 대신해서 하나님 나라의 후사를 이어갈 리브가를 예비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은 중간에 끝나거나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은 완성을 이루실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끊임없이 좋은 것들을 준비하신다. 성도는 이러한 사실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된다. 스콜라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신학자 안셀무스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고의 존재이며, 우리가 상상치 못한 영역에서도 최고의 존재이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받은 가장 큰 약속 중에 하나가 바로 임마누엘 약속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나의 상황이나 환경이나 수준이 아니다. 자기의 한계를 바라보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셔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크기가 바로 내 인생의 크기가 된다. 나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 이런 임마누엘의 약속을 붙잡고, 어떤 상황과 여건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승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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