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4_데칼로그, 하나님의 선언에 담긴 중대한 메시지(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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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때, 개인의 힘만 가지고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출애굽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한 것은 모세가 아니다. 그의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의 힘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이었고, 보호였고, 은혜였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차원의 힘이 나와 함께 있을때, “인간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사람들이 나를 모함하고 넘어뜨리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다.


성도란 혼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여러분이 그렇다. 여러분은 성도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가까이 계셔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하신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출 20: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아세레트 핫데바림을 말씀하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하나님 자신에 대한 선언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계신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려고 하신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1.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선언하신다. 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여호와라는 것이다. 여기서 “종 되었던 집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베트 아바딤’은 본래 “속박의 집으로부터”라는 뜻이다. “속박의 집”, 바로 이것이 바로 애굽의 실체이다.


“애굽 땅”은 이스라엘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땅이었고, 노예로 살게 했던 구속의 장소이며, 박해와 고난을 당하게 하던 괴로움의 터전이었다. 무엇보다 애굽은 우상숭배의 땅이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강한 속박을 받던 곳이었다. 이것이 애굽의 실체이며, 세상의 실체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바로 애굽과 같은 그런 곳이다. 세상은 성도를 핍박하고 괴롭게 하며, 영적으로 강력한 도전과 괴로움을 주는 곳이다. 그러니까 “애굽 땅”이란 자유를 빼앗긴 감옥,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난 절망의 장소, 타락과 부패의 처소, 영원히 멸망받을 세속도시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그런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의 집”에서 구원하셨다. 그리고는 종노릇하는 노예들을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는 너의 엘로힘, 즉 하나님이다.”라고 선언하셨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너를 창조한 창조주이다.”라는 것이다. 표현을 바꾸면 “나는 너를 창조한 너의 주인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절)는 말씀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다는 뜻이며, 둘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이다.


2.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2절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애굽 땅, 노예의 집에서 살던 노예들이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인시켰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면, 자칫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신 것이다. “너희는 애굽에서 노예였다. 그 사실을 기억해라.”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정체성을 선언하신다. “애굽에서 노예였던 너희를 구원한 것이 바로 나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였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신 이유가 있다. 과거에 그들은 노예로 살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유하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열심으로 그들을 자유하게 하신 것이다. 2절에서도 “인도하여 낸” 이라는 표현이 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체티카’는 ‘인도해 내다, 끄집어 내다, 분리시키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출애굽의 역사가 전적으로 창조주이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노예로 아무 힘도 없던 이스라엘을 먼저 찾아가셔서, 그들을 절망의 땅인 애굽에서 끄집어 내셨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다시 노예가 될 만한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비굴해지지 말라는 것이다. 담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세레트 핫데바림’의 서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너는 누구이냐? 그리고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분이시냐?”를 끊임없이 묻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우리는 과거에 아담의 죄를 이어받은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였고, 경건하지 않은 연약한 존재였다. 한 마디로 우리는 죄의 노예였다. 과거에 우리는 누구도 예외없이 그렇게 살았는데, 구원이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와 원수일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니까 구원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베풀어주신 은혜이다. 롬 5:10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그러니까 성도란 ‘아세레트 핫데바림’의 서언이 주는 교훈을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본질상 죄의 노예였고, 진노의 자식이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신가?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3. 나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진짜 주님이 되셨나?


2세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에 로마는 황금기를 지나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이 담겨진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한 황제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대에 기독교는 불법이었다. 신자들은 투옥과 고문을 당하고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았다.


존 맥아더 목사님의 “슬레이브” 라는 책에는, 그 시절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체포된 젊은 집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젊은 집사는 재판 과정에서 질문을 받는다. “너는 누구냐?” 그는 이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생명이 위협을 받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 젊은 집사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대답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대적자들이 이 젊은 집사를 꺾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질문에도 한결같이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을 연구한 한 교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든 질문에 대해서 짧지만 포괄적인 대답,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로 대답했다. 이 간단한 신앙 고백에 천착함으로써 재판관들을 극도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에 그들은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나라도, 가족도, 직업도 그 외 다른 모든 것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고 이미 대답했소”라고 반복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충성 고백이었다. 그래서 존 맥아더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삶의 방식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 20: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말씀은 아세레트 핫데바림의 서언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과거의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그 은혜 안에서 오늘의 내가 누구인지를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나는 주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 고백, 이 짧은 고백이 여러분의 삶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란다. 성도가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높일 때 막혔던 귀가 열리게 되고, 감겼던 영적인 눈이 뜨여지게 된다. 그래서 삶에서 구원의 은혜와 감사의 고백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진리가 됨을 믿으셔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씀을 주시는 분이 우리의 구주와 주님이 되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면 된다. 사람을 만나든, 직장에 나가든, 학교에 나가든, 밥을 먹든, 길을 걸어가든, 그 모든 범사의 순간들 속에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려는 주인 의식을 내려놓으면 된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의 의지와 나의 생각들을 낮추고, 내려놓으면 된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주님께 물어보시라. 사무엘이 했던 것처럼,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그렇게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높일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기적이 임하고, 은혜가 부어지고, 능력이 체험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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