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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출 17:1-7)

하나님이 작정하신 계획


본문은 믿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선 주목해야 하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출 17:1)고 했습니다.

첫 번째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대로 행하여”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이란 “노정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노정대로 행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계획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여정, 목적하신 여정대로 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르비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가야 하는 여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뜻 밖의 사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이미 작정하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르비딤과 맛사”라는 말에서 출발합니다. 본문에는 아주 절묘한 일종의 언어 유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캐내면, 정말 보석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단, 히브리어 “르피딤”은 ‘시원하게 하다’란 뜻의 동사 ‘라파드’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르비딤”은 ‘시원하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기운을 회복시켜는 장소, 쉬는 장소’란 뜻입니다. 당시에 이 지역에는 여러 샘들과 개울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객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피로를 회복시켜주기에 적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르비딤”입니다. ‘쉬는 장소’(즉, 휴식처, 안식처)였다는 것입니다.

의심이 다툼이 된다.


그런데 ‘쉬는 장소’, 즉 평화로워야 할 장소에서 ‘맛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뜻입니다. 평화로운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더욱 평안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7절을 보면,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노정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안 계신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그 의심이 무엇으로 확장됩니까? “므리바”(즉, 다툼, 싸움)으로 확장됩니다. 히브리어 ‘맛싸 우메리바’는 “맛사 또는 므리바”란 뜻이 아니라, “맛사와 므리바”란 뜻입니다. ‘우’라는 접속사는 ‘그리고’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공동체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의식이 희미해지니까, 다툼이 일어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보여야 합니다.

자, 여기서 일종의 언어 유희가 있다고 했습니다. 1절이 시작될 때, 이스라엘 백성이 “노정대로 행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레마스에헴‘입니다. 여기에 ‘맛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맛사’가 ‘여정, 노정, 행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7절에 나오는 “맛사”는 ‘시험’이란 뜻입니다. 단어가 같은데 뜻이 다릅니다. 물론 히브리어 알파벳은 다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맛사’(즉, 여정)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맛사’(즉, 행진)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획하신 여정에서, 하나님을 의심하면 ‘맛사’(즉, 시험)이 된다는 것입니다. 민 14:22-23절을 보면,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광야의 반역까지 이스라엘이 10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의심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의심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불화의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맛사”는 다툼의 “므리바”가 됩니다. 시험이 다툼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신뢰하라.


하나님이 계획하고 목적해서 가게 하시는 여정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면, “르비딤”이 됩니다. 평안이고, 안식이고, 회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고 불평하면, 거기서 “맛사”가 일어나고 “므리바”가 일어납니다. 시험이 되고, 다툼이 되고, 갈등이 되고, 불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다른 모세의 모습을 보십시요. 2절에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지금, 원망을 넘어서 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모세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과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째서 하나님을 시험하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모세는 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백성들은 원망했지만 모세는 홀로 기도했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발견했을 때도, 모세는 혼자 기도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도, 모세는 혼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르비딤에서도 모세는 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돌을 던지려고 하는데,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련이나 연단을 만났을 때,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거기서 돌을 던지는 자가 되면 쓰임받지 못하고 성장하지도 못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돌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가게 하시는 여정이 성장하는 과정이 됩니다.

돌 던지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라.


이스라엘이 가게 하신 여정은 그들을 성장시키려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들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가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나 갈렙처럼, 출애굽 세대들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성장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행진을 통해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이 섭리가 깨달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돌을 던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또 더 큰 원망을 낳고, 결국에는 싸움을 낳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쓰임받고, 칭찬받고,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됩니까? 너무 분명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원망과 불평을 토해내는 인생이 아니라, 기도를 토해내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원망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돌을 던지게 합니다. 더 큰 죄악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반면에 기도는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해줍니다. 기억하십시요. 원망은 원망을 낳고, 더 큰 원망을 낳고, 불평과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게 기도로 바뀌면,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여러분의 기도에 기름을 부으시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목적하고 계획하신 광야의 여정에서 “성장하고 변화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못하면, 원망과 불평과 싸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면,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합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삶은 성숙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망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 빠져들 만한 틈이 느껴지면, 기도를 통해서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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