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극복하는 것이다.(마 8:23-27)


두려움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시종일관 두려움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먼저 우리는 제자들에게 닥친 곤란한 지경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야 한다. 23절에서는 제자들이 따랐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그게 죽음의 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작아질 수 있다.

믿음이 작아지기만 할까? 마가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여전히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지만, 제자들은 당연히 믿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는데, 그 길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열심히 교회를 섬겼는데,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이 더 피곤해졌다면? 교회에 많은 사랑을 쏟아 부었는데, 그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면? 그래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신앙을 지키겠지만, 어떤 사람은 믿음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고와 마주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질지도 모른다. 모든 행동과 사고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꾸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장면을 마가복음으로 읽어보겠다. 막 4:38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했다. 그들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 앞에서 죽음에 직면했을 때와 같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돌보지 않고 무사태평하게 계시면 어쩌십니까? 예수님 때문에 죽게 되었는데,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실 겁니까? 예수님 일어나서, 이 상황에 대해 책임을 좀 지십시요.”

제자들의 원망하는 마음이 느껴지는가? 사람들이 그렇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관계성이 나빠졌을 때,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깨운 것이 아니다. 원망하는 마음,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을 깨운 것이다. 예수님이 일어나서 그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두려움에 빠져 들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고,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움에 갇혀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도 상실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기 원하신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원망하고 후회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미움이나 시기 질투는 말할 것도 없다. 불신앙과 의심의 영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큰 풍랑 속에서도 우리가 그런 마음을 버리고, 오직 신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설교 제목이 “두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지 않나? 두려움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언제 찾아오나?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온다.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상황에서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했다. 인간의 한계 상황,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찾아온다. 극복할 수 있으면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두렵다고 여기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풍랑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셨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폭풍은 언제든지, 예측하지 못한 때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라. 한계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무슨 뜻이라고 했나? 근심하는 마음 대신에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두려움이 있으면, 두려움 대신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바꾸라는 뜻이다.

몸은 흔들려도 영혼은 흔들리지 말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가 무엇일까? 제자들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함께 흔들려 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라. 그분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육신은 흔들렸을지 모르나, 영혼은 흔들리지 않으셨다.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로 단단히 내리면 된다. 두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으로 대신하면 된다.

제자들은 폭풍이 있을 때도 두려움에 빠져 있었지만, 폭풍이 잔잔해 진 뒤에도 두려움에 빠져 들었다. 27절에서,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라고 했는데, 마가는 풍랑이 잔잔해 뒤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막 4:41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제자들은 문제가 있을 때에도 두려워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었어도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문제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인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은 그런 두려움에서 빠져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막 4: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렇게”라고 하셨다. 어째서 이 정도로 무서워하는가? 예수님의 책망은 바로 이것이다. 믿음이 있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할 수 있을까? 폭풍이 죽음을 위협한다고 해도 신자는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풍랑으로 육신은 흔들릴 수 있지만, 풍랑이 우리의 영혼마저도 흔들게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을 견고히 세워야 한다.

믿음으로 세워진 영혼이 굳건하면 깊은 간증이 남게 될 것이다.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처음부터 폭풍은 제자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다. 인생에 불어오는 폭풍은 여러분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여러분의 기도와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겠다는데 하나님이 도망가시겠는가? 육신은 흔들려도 영혼이 고정되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주님이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라.


자, 이제 예수님에 의해서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 여기이다.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는가? 그렇다.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폭풍 속에서도 노를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진 뒤에는 누가 노를 잡고 있었을까? 그렇게 노를 잡고 있었던 사람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가? 사업장에 두려움의 파도가 요동치고 있는가? 자녀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무엇이 있는가? 그런 것들은 신경쓰지 말라.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 앞으로 돌려 세우면 된다. 십자가 아래에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으라.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노를 잡고 항해하라.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을 하라. 담대하게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하라.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란다. 기도하는 일, 예배하고 섬기는 일, 여러분이 속한 속회와 선교회에 참여하는 일, 여러분의 삶을 영적으로 살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신애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두려움도 환난도 염려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극복할 수는 있다.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된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없애신 것처럼, 두려움도 환난도 없애실 수 있다. 슬픔과 염려도 없애실 수 있다. 여러분의 문제 덩어리를 없애실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들어올 때마다 여러분의 노를 붙잡고 담대하게 항해를 계속해 가시라. 주님을 의지하면서 두려움의 파도를 넘어서시기 바란다. 인생에 장벽이 나타났을 때, 두려워떨지 말고 기도로 돌파해 가시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문제와 시련과 환난과 역경이 바뀌게 될 것이다. 고난의 흔적이 사라지고 간증이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