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갈아엎어야 말씀이 들리고 기도가 나간다.



마음을 갈아엎어야 말씀이 들리고 기도가 나간다.(마 6:9-13)


하나님이 이루어지기 원하시는 뜻이 있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선택하도록 하신 것이 ‘델레마’이다. 그런 하나님의 ‘델레마’가 하늘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 흩어져있던 그런 생각과 뜻이 하나님 안에서 통일되었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의 의미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런 방식으로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생각과 분쟁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이념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적인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뜻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나? 그것에 답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고 말씀드렸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실 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주인으로 존재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이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게 할 수 있는가?


1.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표현할 때, 그 믿음이란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믿는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마음이 다른데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분과 마음이 같아진 상태로 믿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예수님과 진짜 연합된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성도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렇게 주님과 붙어 있는 상태로 주님을 믿는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반대로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 15:7절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주님과 연합을 이룬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전까지 기도가 자기 뜻대로 하는 기도였다고 하더라도, 예수님 안에 머물게 되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올려 지게 된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의 말씀에 내가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내 뜻, 내 생각, 내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뜻을 좇게 되기 때문이다.


2. 자기의 마음을 주님께 다 내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들어와서 도전할 때가 있다. 성도는 말씀에서 도전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가 가졌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이 추구하는 것과 다를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음이 굳어버린 사람은 강퍅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애굽의 바로가 그랬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다.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있으니까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대항한다. 말씀을 죽이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물리치니까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귀신을 내쫓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 반대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마 12:38절에 보면, 어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앞서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다.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을 보고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또 표적을 구한다.


이 사람들은 믿기를 주저하고, 믿음에 반응하기를 더디게 하는 사람들이다.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같아지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우리는 표적을 보고 믿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 버리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 선포되어도 말씀을 죽이게 된다.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지 않으며,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다스릴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 마음을 움켜쥐고 살면, 그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게 되어 있다. 이 마음을 내가 붙잡고 살면 안 된다.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한다. 완악한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우리까지 완악해질 필요는 없다. 마음이 잠간씩 딱딱해 질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그 상태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 드리려야 한다. “주님, 내 마음을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만져 주시면 평안이, 만져 주시면 기쁨이, 만져 주시면 감사가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성도란 이런 기도의 제목으로 승리해야 한다.


3. 편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서 많이 가졌고 덜 가진 것이 중요하지 않다. 세상적으로 성공하든지 그렇지 못 하든지가 중요하지도 않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여러분이 하는 말이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비전이 되는가? 여러분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를 만족시키는 것인가? 이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성도가 되라는 것이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에게 의미있는 시간, 하나님이 관심을 가질만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다. 때와 시기를 분별하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체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것을 꺾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보면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생각과 고집을 앞세우다가 신앙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고집스런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가로막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로막는다. 성령을 소멸하고 부흥을 더디게 한다. 일체의 편견이 깨뜨려져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아의 생각과 고집을 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시켜야 말씀이 들려지고 기도가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란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을 내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뜻과 방식대로 자기를 이끌어 가실 때,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내 생명이 하나님께서 다루어 가시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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