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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땅에서 나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게 하셨다.(출 16:13-21)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 만나


오늘 읽은 말씀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이 양식으로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어 ‘레헴’은 ‘먹을 것’이란 뜻인데, 출 16:3에서는 ‘떡’으로 번역되고, 4절에서는 “양식”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으로는 “음식”이나 “빵”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레헴’과 관련해서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단어가 “베들레헴”입니다. 룻기에서 보아스와 룻이 만나 결혼을 한 곳이고, 다윗의 고향이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히브리어 ‘벧+레헴’이 합쳐진 말인데, ‘빵집, 떡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레헴’은 ‘먹을 양식’이란 뜻이라고 했습니다.

출 16: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양식”을 하늘에서 비 같이 내리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주제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애굽에서 430년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습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어디에서 나는 것으로 양식을 얻었습니까? 주로 땅에서 나는 것으로 양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농사를 짓고, 땅에서 목축을 하면서 양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땅에서 나는 것으로 양식을 삼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 양식을 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품고 말씀을 따라오십시요.

이 만나과 관련한 스토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생을 살게 하시는지 알려주려는 메시지입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먹고 사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먹고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출 16장에서도, 먹고 사는 방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원칙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방법이 아니라 원칙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방법이 아니라 의식입니다. 어떤 의식입니까? “신앙 의식”입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생존의 방법이 아니라, “신앙의 의식, 신앙의 원칙, 신앙적 삶”을 계속해서 가르치십니다. 광야에서 양식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을 보고, 그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양식을 누가 주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권”이 누구에게 있다는 뜻입니까?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먹는 양식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땅에서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굳이 “하늘에서 내리신다”고 말씀하시고,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서 굳게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직접 내려주시는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생명의 주권, 음식물의 주권을 다 가지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날 때,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을 먹으면서,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중요하다는 원리를 알라.


그러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의 의미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 의미란 무엇입니까? 땅에서 나는 것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는 이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 8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 8:3절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떡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떡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떡으로만 사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먹고 사는 양식에 의지해서만 삽니다. 짐승들은 자기 육신의 힘으로만 삽니다. 그러니까 “본능에 의존해서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백성들도 이 진리를 깨닫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집착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에 주목하는 인생이 되라고 알려주려는 의도입니다. 그것을 만나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 8:16절에서,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만나를 먹이신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을 낮추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나싸’는 ‘입증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그들이 믿음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믿음을 원하신 것입니까?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땅에서 나는 양식보다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인생의 원칙으로 삼는 믿음입니다.

신 8:17절에서는,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나를 통해서, “절대 은혜”를 알라는 것입니다. 만나를 얻기 위해서 광야 백성이 해야 할 노력이 없습니다. 자기가 농사짓는 수고를 해서, 열매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에서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수고와 노력과 열심을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 8:1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소유가 다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노력과 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코아흐’는 ‘육체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정신적인 능력이나 기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마음의 힘을 주시고, 정신적인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재물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늘의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통해서, 누구와 연결되고 어디와 연결되라는 뜻입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님 나라(즉, 하늘 나라)와 연결되라는 뜻입니다. 땅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면서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통해서 하늘에 주목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기회의 무대인가, 심판의 무대인가?


여러분, 땅에 주목하고 집착하는 인생이 축복이 아닙니다. 하늘에 주목하고,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 인생이 축복입니다. 이 세상이 “기회의 무대, 성공의 무대”라고 생각하면, 신앙 생활이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씀을 가지고 성공하고, 말씀을 가지고 잘 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목적이 되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기회의 무대, 성공의 무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세상이 기회의 무대이고, 성공을 위한 무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기회의 무대이고, 성공을 위한 무대라면, 여러분에게 성공하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심판의 무대”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성공”과 관련한 단어는 딱 2번 정도 나옵니다. 반면에 “심판”과 관련한 단어는 200번이 넘게 나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히 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진리입니다. 이게 여러분에게 보이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매일 같이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이것이 무엇이냐?”를 물으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양식이 무엇이냐? 이 하늘에서 내린 양식, 하늘에서 내리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내가 어떻게 이 양식으로 살라는 것이냐? 어떻게 말씀으로 살라는 것이냐?”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연결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심판의 무대”인 인생에서,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하늘에 주목하는 원리


그러면 하늘에 주목하는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만나를 거두고, 먹는 과정에서 알려주려는 메시지입니다. 이 만나를 먹는데,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너무 움켜쥐려는 욕심을 가지고 살지 마십시요. 사람이 물질적인 욕망이나 성공과 출세에 대한 욕망에 빠지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앞에 “망하는 길, 심판의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성취의 길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해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사람은 썩어질 것밖에 거두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를 사모하십시요. 성령충만을 받아서, 육체의 욕심으로 썩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을 거두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그날 그날 먹으라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그날 주신 양식을 남기지 말고, 저축하지 말고, 쌓아두지 말고, 그 날에 다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다 쓰고 가는 성도가 되십시요. 이 말은 은혜를 흘러가게 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남김없이 사용하면, 주님은 새로운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매일 아침마다 양식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묵을 양식을 주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양식을 주셨습니다. 성도는 묵은 양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새 양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날마다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은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말씀을 듣고,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얻는데 어떤 노력과 공로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만나를 바구니에 담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의 영혼에 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레마가 되어서, 영혼을 생명력있게 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제6일에는 갑절로 거두고, 제7일에는 안식하라고 했습니다. 여섯 째 날에 거둔 만나를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7일 안식일에 먹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씀을 붙잡고 안식하는 시간, 묵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예배하면서,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통해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이 그냥 흘러가는 말씀이 되게 하지 말고, 두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를 깨닫는 특별한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주목하고, 하늘의 말씀에 주목하면서 사는 성도가 되십시요. 그게 진짜 축복의 삶인 것을 알고 그렇게, 우선순위를 두고 사십시요.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면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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