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사역을 진행하신다. 23절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했다. 이 구절이 오늘 나눌 말씀의 핵심이다. 예수님의 사역이란 첫째가 가르치시는 것이고, 둘째가 전파하시는 것이고, 셋째가 고치시는 것이었다. NIV 성경에서는 “teaching, preaching, healing”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치시는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분도, 날마다 소망과 평안, 위로와 기쁨으로 채워지는 삶이 되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으셔야 한다. 성도가 어떻게 신앙인으로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
1. 말씀을 받을 때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사람이 질병에 걸리면 마음이 고단해지고 피곤해진다. 어디가 아프기 시작하면, 염려가 우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염려하다”라는 말이 헬라어로는 ‘메림나오’인네, 마음이 둘로 나눠진 상태를 뜻한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 염려는 잘못된 무엇인가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염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염려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몸이 아프든지 마음이 아프든지 “염려”가 마음에 들어와 있으면,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염려”를 마치 가시와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말씀을 듣고 묵상을 해도 “염려”라는 가시가 있으면, 그것이 마음을 자꾸 찌르게 된다.
말씀이 진짜 능력이 되려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출애굽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가데스 바네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일에 실패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의 약속 대신에 염려에 붙잡혔다. 믿음을 말씀을 붙잡으면 약속의 열매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불신앙으로 염려에 붙잡혔다. 그래서 결국 광야에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말씀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야 말씀이 진짜 능력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도에 답이 있다. 우리가 광야에서 시험받으셨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었다. 시험을 이겨내실 수 있는 비결이 말씀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씀이란 단순한 말씀이 아니다. 기도의 힘이 붙어 있는 말씀이었다. 40일을 금식하면서 기도하신 것이 말씀에 붙어서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도의 능력이 말씀의 능력으로 나타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으로 산다고 해도, 그 말씀이 능력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왜 그럴까? 기도가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씀을 붙잡고 산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말씀이 능력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기도 없이도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심지어 교회학교 교사를 하거나 성가대를 봉사하는 것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 없이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기도를 통해서 말씀이 능력이 되고, 찬송이 능력이 되고, 신앙하는 삶이 능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기도는 믿음없이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시라는 것이다. 그럴 때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것이 “천국 복음”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천국”이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실레이아’는 통치의 개념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왕국,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진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마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이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마 13:24)고 했다. 그리고 마 13:37절 이하에서는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마 13:37-38)라고 하셨다. 좋은 씨를 부린 사람이 “천국”이라고 하셨는데, “인자”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천국이란 결국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다. 인자가 되시는 예수님 자신이 천국이라는 것이다. “천국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천국이 예수님 자신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다고 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그 나라의 실재가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환영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하면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하니까 받아들이기 힘들고 당황스러워 한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이 능력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가 없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주인되시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하면 감사로 나간다. 찬양과 영광으로 나간다. 자기의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런 분들에게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나를 버려야 예수가 산다]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과 나’라는 말보다 훨씬 더 귀한 말을 찾았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God and not I)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먼저이고 내가 나중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이시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는 바울이 전했던 고전 15:10절 말씀을 적어 놓았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러분에게도 이런 고백이 날마다 있게 되시기 바란다.
3. 말씀이 능력이 되면 삶의 문제를 압도해 버린다.
예수님께로 나오는 여러 종류의 환자들을 주목해 보시라.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치셨다. 예수님께로 나온 모든 사람들이 “영, 혼, 육”의 치유를 받은 것이다. 막 1장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놀랐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나? 예수님께서 “권세있는 자와 같이”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 말씀의 능력에 붙잡히셨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님에게 말씀이 능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문제를 완전히 압도해 버리시는 것이다.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말씀이 능력이 되면 사람들의 문제를 압도해 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말씀이 능력이 되는 것일까? 호 10:12절을 보면,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자기들이 절대시하던 묵은 땅을 갈아엎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여호와께서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여러분, 농사를 짓는 분들이 땅의 힘, 곧 “지력”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농사를 지을 때 지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력이 다한 땅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력이 약한 땅에서는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없고, 지력이 다한 땅에서는 싹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까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땅이 되고 싶으신가? 그렇다. 좋은 땅이 되셔야 한다. 그래야 말씀의 열매가 나오고, 능력이 체험되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땅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께로 가까이 오시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미묘한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다.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라고 했다. 예수님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되나? 사실 기다리면 된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려왔다”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고 했다. 이제는 찾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정도까지 되었다.
지금 마태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 신앙의 적극성이다. 여러분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다면, 말씀의 권능을 체험하고 싶다면, 약속의 말씀을 이루고 싶다면, 신앙의 적극성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주님께로 날마다 가까이 나가시라는 말씀이다. 은혜의 자리, 성령의 충만을 받는 자리,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파고들어 가야 한다. 거기서 하나님이 보말씀과 기도의 응답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압도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그런 믿음의 역사가 체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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