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뿌리내리면 삶이 기적이 된다.(마 13:1-9)


길가에 떨어진 씨앗


말씀의 씨앗이 열매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쫓아내야 합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말씀이 뿌리내리면 삶이 기적이 됩니다.” 자, 그러면 우선 무엇이 신앙을 방해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절을 보면,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이 “길가”라는 것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일반적인 길이 아닙니다. 밭과 밭 사이에 나있는 길을 뜻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그런 길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길도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서 단단해졌기 때문에 씨앗이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 위에 떨어진 씨앗을 새들이 와서 다 먹어버린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절에서,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14절 이하에 나옵니다. 14절에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15절에서,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완악해졌다”(에파퀸데)는 것은 ‘두꺼워졌다, 살쪘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속적인 생각,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쌓이면서 “자아가 너무 살쪄버린” 것입니다. 너무 두껍게 살이 쪄서 감각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파고들어가지 못합니다. 바울이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 정도까지 갔으면, 이미 불신앙의 상태입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에 와도 아예 작정하고 졸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들으려는 생각과 기대가 아예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통회 자복하고, 갈아엎어야 합니다. 호세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호 10:12)고 했습니다. 우상에 물든 마음, 세속에 물든 마음을 다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자아에 “복잡한 생각들, 고집과 욕망” 같은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까? 그것을 다 갈아엎어서 부드러운 땅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


그 다음으로 돌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밭의 특징이 있습니다. 5절을 보면,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라고 했습니다. 돌밭의 특징이 보이십니까? 돌밭의 특징은 좋은 밭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좋은 밭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좋은 신자처럼 보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흙이 얇아서 뿌리가 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싹이 나오기는 하는데,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과거회귀형”입니다. 신앙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빙글빙글 돕니다. 잠깐 앞으로 나가기는 하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20절을 보면, 그들은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받아서 기뻐합니다. 그런데 곧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21절을 보니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받으면, 말씀이 영혼을 위로하고, 삶을 은혜로 이끌어 줍니다. 그런데 그 말씀으로 인해서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마음이 돌밭과 같은 사람은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뿌리내린 사람은 환난과 박해를 통과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신앙의 간증을 남깁니다. 반면에 돌밭과 같은 사람은 말씀으로 인해서 받는 환난에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실족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돌밭과 같으면 신앙이 항상 제자리입니다. 잠깐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내리지 못해서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말랐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의 신앙이 남아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라버렸습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자기 의지와 열심을 통해서 앞으로 나가려고 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께서 다스리시게 해야 합니다. 겔 36:26절에서,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히브리어 ‘에벤’이 ‘돌’이란 뜻이라고 했습니다. “에벤에셀”이 ‘도움의 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마음이 “돌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제거하신다”고 했습니다. 부수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돌밭”과 같으면 새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고쳐서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도 그것을 잘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거해야” 합니다. 부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옛 마음의 자리, 돌밭과 같은 마음의 자리에 “새로운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어떤 돌들이 있습니까?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돌들이 무엇입니까? 이게 다 부서져 나가야 합니다. 탐욕과 정욕, 미움과 시기, 질투와 다툼.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성령의 은혜로 깨져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불을 받아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진 씨앗


세 번째가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가시덤불이 있는 곳, 가시덤불과 가까운 곳에 씨앗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세속적인 삶을 가까이에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요. 세상을 떠나서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세속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고,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과 짝지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22절을 보면, 그들도 말씀을 듣기는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말씀을 방해합니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고 했습니다. 온갖 염려와 돈에 대한 유혹이 그들의 마음을 막아섭니다. 가시덤불은 여러분의 자아입니다. 율법적 자아,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자아입니다. 말씀이 뿌리내리려면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아의 만족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게 본성입니다. 그런 자아에 붙잡히면 말씀이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에게 붙잡혀야 합니다.

좋은 마음 밭이 되라.


성도가 어떤 마음이 되는지는 분명합니다. “좋은 밭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8절에서,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밭이란 어떤 밭입니까? 23절을 보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말씀을 듣고는 어떻게 합니까? 말씀을 듣고 버리는 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비평하고, 평가하는 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쉬니에미’라는 헬라어는 ‘깨닫는다’는 뜻이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포개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씀이 어떻게 깨달아집니까? 가르치는 선생님의 생각과 나의 마음이 포개어지니까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어떻게 깨달아지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포개어지면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포개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포개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뜻과 나의 뜻이 포개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삶이 됩니다. 예수님의 삶이 나의 삶이 되고, 나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 8:15절에서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떻게 열매맺는 신앙이 되는지가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밭인지가 분명합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려면, 씨를 뿌리기 좋은 상태로 밭을 가꿉니다. 그렇게 준비된 상태의 밭이 좋은 밭이라는 것입니다. 준비된 마음, 준비된 영혼이 말씀을 뿌리내리게 합니다. 말씀이 뿌리내리면, 삶이 기적이 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삶이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