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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이루어지면, 내 삶이 역사가 된다.(19:1-6)


은혜를 기억하고, 말씀이 기준되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 장막을 치고, 모세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보십시요. 4절에서,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했다고 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에게 역사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날개 위에 업어서 인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 만큼 돌봄과 관심을 가지고 인도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이 그렇습니다. 물이 없으면 물을 주시고, 양식이 없으면 양식을 주시면서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로 그들을 덮으시고 보호하시면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생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임마누엘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기억한다면, 마땅히 지금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지키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말씀에 축복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내 말에 따라서 손해보지 않았지? 내 말대로 해서 애굽에서 구원받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 말대로 하니까 너희에게 축복이지 않더냐? 그러니까 지금부터 더욱 내 말을 잘 듣고 지켜라”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5절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전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잘 보셔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기준이 무엇입니까? 기준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사람이 기준이 아닙니다. 목사가 기준도 아니고 장로가 기준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어떤 전통도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동안 그렇게 해 왔습니다.”라고 하거나 반대로 “우리는 그 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전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 왔다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이 하라고 지시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지시하시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사나, 일이나, 건물이나, 재정이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따라야 합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면, 세 가지 복이 임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 19: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지키라는 것은 “말씀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나라와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말씀이 이루어지면, 내 삶이 역사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게 출 19:5절과 6절에 나옵니다. 출 19:5절에서는,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고, 셋째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약속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쎄굴라’는 ‘소중하게 간직된 사유재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특별한 보물’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속이는 자)과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를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과 같이 존귀한 존재로 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것은, 주인의 권한에 따라서 지위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군대 장관의 종은 ‘그가 누리는 권한에 비견되는 권한’을 가집니다. 왕의 노예는 ‘왕의 권한 일부’를 가집니다. 특히 그가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왕과 같은 권한”을 가집니다. 비록 그가 노예의 신분이라도 ‘왕의 신하’나 ‘귀족들’에게 조차 “왕의 권한”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고대 사회 노예가 가지는 특별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받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이루어지면, 능력이 삶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약속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맘레케트 코하님’이라는 히브리어는 ‘제사장들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제사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것은, “제사드리는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나라”(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라)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은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드리고 싶은데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식에게 주고싶은 선물이 있는데, 그들이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은 언젠가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토록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진 사람과는 영원토록 함께하시면서, 그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예배란 받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배란 성결하게 해서 돌려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가 드린 것을 성결하게 해서 다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그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란 임재의 축복이며, 드릴 수 있음에 대한 축복이며, 드린 것을 성결하게 해서 되돌려 주시는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예배할 때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더럽혀진 자기를 하나님께 드릴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여러분을 성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 말씀의 능력과 힘을 더해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성도들이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복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제사장”의 정체성입니다.

세 번째 약속이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또 놀라운 은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룩”이란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게 구약의 신앙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것들을 불로 태우십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안으로 들어오셔도 소멸되지 않습니다. 심판받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상태가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될 때 진정한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진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게 되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이게 연합의 축복이고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이란 창조주가 원하는 피조물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창조주가 의도한 목적대로 존재하는 것이 “카도쉬(즉, 거룩, 구별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의도대로 존재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된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무엇을 만들었는데, 의도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딱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룩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 축복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기도를 드렸더니,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자기가 구한 것도 응답을 받고 구하지 않은 것도 다 받았습니다. 다윗의 경우에는 일평생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행 13:22절을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무엘서와 역대기서에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거룩의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어리로 가든지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과정입니까? 사업이나 직장이나 건강이나 재물이나 얼마나 힘겨운 인생입니까? 그런데 “거룩한 백성”이 되면, 다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이루어지면, 이게 다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핵심은 “말씀”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요.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는 길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열심히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요. 그러면 말씀이 이루어지고, 말씀이 이루어지면, 삶이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려분의 생애가 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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