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살지 말고, 보게 하시는 대로 살라(삿 16:28-31)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태어난 삼손


삼손은 예수님처럼 구약 성서에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삼손이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에게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도 ‘태양’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손”은 태양이란 뜻의 ‘세메스’와 ‘작고 귀엽다’는 뜻의 ‘온’이 붙어서 된 말이다. 그러니까 삼손은 ‘작은 태양’이라고 뜻이기도 하고, 영어로 번역하면 ‘Sunny’(즉, 태양처럼 빛나는)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특별한 출생 스토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힘”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삿 13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해야 하는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모아서 블레셋을 정벌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언제나 혼자입니다. 사람을 모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습니다. 개인적인 복수와 자기 만족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영웅이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영광을 헛되게 사용하니까 눈이 뽑히고 조롱당하는 수치스런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정욕에 이끌린 삼손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삼손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살지 않고,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삿 14장에서 삼손의 처음 행동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장면부터 수상합니다. 삿 14:1절을 보면,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라고 합니다.


삼손이 이스라엘 역사에 모습을 나타내고서 처음으로 보여준 시선이 “딤나의 여자”입니다. 그것도 이방 족속 중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의 여자입니다. 그 여자를 보고 자기 부모에게 아내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족속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결혼을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부모가 그 결혼을 반대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삿 14:3절을 보면,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고, 부모의 말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정욕을 따라갔습니다.

삿 16:1절에서는, 삼손의 시선 가사에 사는 기생을 향합니다. 삿 16:4절에서는,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했습니다. “들리라”, 히브리어로는 ‘뗄리라’라고 하고, 영어로는 ‘딜라일라’라고 합니다. “들릴라”는 ‘약하게 하는 자, 밤의 여자’란 뜻이 있습니다. 삼손은 ‘밤의 여자’를 보고,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나실인이 하나님의 거룩과 사명을 보지 않고, 자꾸 세상을 보고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들릴라에 와서는 “사랑한다”는 표현까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이 깊어져 가는 것처럼, 삼손의 타락이 깊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을 사랑했던 것처럼, 삼손이 블레셋 여자를 사랑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정체가 “들릴라”입니다. ‘밤의 여자, 어둠의 존재’입니다. 태양같은 성도를 약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나실인’이란 히브리어로 ‘나지르’인데, ‘죄에서 성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 바쳐진 사람’이란 뜻입니다.


거룩과 사명으로 가야 한다.


나실인은 하나님만 섬기도록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나실인이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룩입니다. 비전과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나실인의 눈으로 이방 여자를 보고, 정욕과 자기 만족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나실인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과 사명에서 멀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여자와 결혼하면 안 되는데, 나실인 삼손이 이방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시체를 만지면 부정한 자가 되기 때문에, 시체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기가 죽인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떠서 먹습니다. 그 꿀을 자기 부모에게도 먹게 합니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었던 것처럼, 엄청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나실인이 시체를 만지거나 해서 부정해지면 7일 동안 정결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7일 동안 잔치를 열었습니다.

삿 14:10절에 나오는 “잔치”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미쉬테’인데, 술이 많이 소모되는 잔치라는 뜻입니다. 그 어근인 ‘사타’라는 단어가 ‘마시다’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술이 많이 소모되는 결혼잔치를 열었습니다. 타락한 나실인의 모습입니다. 7일을 정결하게 지내야 하는데, 7일 동안 술 먹는 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수수께끼 도박을 합니다. 도박에서 지니까 홧김에 자기 아내를 친구에게 넘겨 버립니다.

삿 15장에서는 나귀의 턱뼈로 사람들을 쳐서 죽였는데, 나실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귀의 턱뼈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시체를 만지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죄를 지었는데, 나실인으로서 정결의식을 행하지 않습니다. 나실인 규정을 어기면 나실인은 7일 동안 정결하게 지낸 다음에 제 7일에 머리를 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나실인 서약이 무효라고 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8일에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는 속죄 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새롭게 나실인 서약을 할 날을 정하고 1년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정결의식을 행해서, 새로운 나실인이 되었다는 표로 삼아야 합니다. 삼손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실인의 규정을 어기면서도 너무나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서 그런 예식을 치르게 하십니다. 우선 그는 들리라에 의해서 머리가 밀리게 됩니다. 그래서 수치와 모욕의 날을 살아야 했습니다. 정결한 날을 보내지 않았던 삼손으로 하여금 수치와 모욕감 속에서 정결의 날을 지내게 하신 것입니다.

비둘기 두 마리를 속죄 제물과 번제물로 드려야 했는데 드릴 제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두 눈으로 비둘기 두 마리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비둘기 대신에 자기 정욕의 원인이었던 두 눈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삼손은 보이는 대로 살게 했던 눈, 정욕에 붙잡히게 했던 눈을 제물로 바칩니다.

마지막으로, 1년된 수양 대신에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다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몸입니다. 그래서 그가 드리는 몸은 순결하지 못했습니다. 두 눈이 빠진 흠이 있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의 요구대로, 그의 몸을 산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힘을 주셔서, 이스라엘 사사로서 감당해야 했던 사명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능력과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삼손이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했는데, 히브리어 ‘와이크라’는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삼손은 절실하게 외쳤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큰 소리를 부를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의 외치는 소리는 ‘고통의 소리’였고, ‘회개의 소리’였고, ‘도움을 구하는’ 소리였습니다.

삼손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와서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보았습니다. 삼손의 눈이 건강할 때는 나실인의 눈이 아니라 정욕의 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눈이 뽑힌 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안목이 사라지고 나니까 자기의 사명이 보였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보게 하셨던 사명이 보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힘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삼손이 이 기도를 할 때,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는 정말 처절하게 회개하면서, 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삼손이 “나를 강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웨핫제케니’라는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의 근원이 되심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강하게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이전에 사명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지만 나를 강하게 하셔서, 단번에 그 일을 행하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능력과 힘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히면 얼마든지 하나님이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쓰임받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 늦지 않게 쓰임받아야 하고, 기왕이면 끝까지 쓰임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과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