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늘 복음이 될 수 있도록 깨어있으라


복음이 늘 복음이 될 수 있도록 깨어있으라(창 25:12-18)


복음이 진짜 복음이 되어서 내 삶을 사로잡게 하려면,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비본질적인 것에 붙잡혀서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온전한 것에 사로잡혀서 살아야 하는데, 잘못된 것에 붙잡히게 되면 염려와 불안이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결국에는 불신앙으로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12명의 가나안 정탐꾼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10명이 어디에 붙잡혔냐면 여리고에 붙잡혔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에 붙잡혀야 하는데, 여리고에 붙잡히니까 자꾸 비교가 되고 열등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리고’라는 크기와 외형에 마음이 묶이니까 두려움과 염려가 일어났다. 그것이 결국에는 불신앙으로 이어져 버렸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땠나? 그들은 여리고에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었다. 약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있으니까 두려움이 없고, 염려가 없었다.


본질을 제대로 꿰뚫고 있어야 영적인 삶이 살아지고, 그래야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할 수 있다. 여러분의 삶은 복음이 늘 복음이 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실 믿음의 열매와 결실을 충분히 맺으면서 사시기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첫째, 언제나 하나님이 진리되심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창 25장에는 세 개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그두라’와 결혼해서 여섯 아들을 낳은 것이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이고, 세 번째는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이다. 기록된 족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25장에 나타난 족보들이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그룹이 아브라함의 여섯 아들과 이스마엘, 그리고 에서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 바깥으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다. 그 다음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께 선택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갈라지는 특징이 무엇일까? 누가 떨어져 나가고, 누가 선택받고 축복을 받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이었는지 자기를 의지하는 인생이었는지로 구분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이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여섯 아들, 이스마엘, 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을 의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간단하지만 무거운 차이가 이들의 삶을 갈라놓았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관념이 아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확실한 정의이다. 신앙은 자기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간단하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고 사는지를 보면 된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한다고, 봉사하고 선교한다고 모두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야 신앙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붙잡으신다. 어떤 때는 자기를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는 사람이 잘되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높여 주신다.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주시고, 축복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


2.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자로 노벨상을 받았던 대니얼 카너먼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밝혀낸 중요한 진리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믿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자기 마음에 따라서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게 인간의 연약함이다. 그래서 존 칼빈은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다”고 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아서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거짓에 빠지기 쉽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사로잡혀서 살아야 한다.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데, 에서는 버려지고 야곱은 선택되었다. 무슨 차이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대하는 태도이다. 에서는 약속을 가볍게 여겨서 포기해 버렸고,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다. 다음에 자세 다루겠지만,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넘길 정도로 언약을 가볍게 여긴다. 반면에 야곱은 끊임없이 약속을 향해서 도전한다.


성도가 언약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의 시선과 안목은 결국 현실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 자기 에고를 사랑하고, 자아의 정욕에 이끌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현실의 유행과 사조, 현실의 문제들에 얽매여서 염려하고 근심하면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관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관심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 오늘도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붙들고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백성이 붙들 수 있고, 또 붙들어야 하는 약속은 무수히 많다.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기쁨이 회복된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셋째로, 성도란 돌아갈 본향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 매우 중요한 표현이 나온다. 17절,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137세에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137세에 자기 본향을 갈데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137세에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영원한 약속의 본향을 떠나 버렸다.


그가 약속된 본향을 떠난 뒤에, 그의 후손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라. 18절을 보면, 그들은 “애굽 앞 술”까지 갔다. ‘술, 곧 수르’는 이방인의 세력이 있는 곳, 이방인의 힘과 재물이 있는 곳, 이방인의 힘이 있는 곳이다.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바로 그곳으로 흘러갔다. 그리고는 그들 모두가 다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고 했다. 이 말은 “그들이 모든 형제와 대적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속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의 방향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구속되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간다. 자기 힘으로, 자기 의지로, 자기 능력으로 살아보려고 하니까 하나님 나라에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의 본향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의 삶이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본향에 둔 나그네임을 기억했다. 순례자와 같이 나그네 인생을 살았던 대표자가 아브라함이다. 그는 자기가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냥 막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라고 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또 자기 마음대로 자기 인생을 결정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방향에 따라서 인생을 살았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그 인생길에 무엇인가 흔적을 남겼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성도란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는 것도 믿음이고, 죽는 것도 믿음이어야 한다. 살아가는 방식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복음의 기쁨을 나눠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나눠야 한다. 믿는 자의 삶의 방식이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나눠야 한다. 그래서 믿음의 덕을 세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마음이 사무치도록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면, 누구나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너는 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그리스도인은 피 묻은 복음에 빠져야 한다. 나를 구원하신 피 묻은 복음에 감사하고, 구원받은 은혜로 덕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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