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2(창 35:1-8)



하나님은 디나의 비극, 레위와 시므온의 살인 사건 등으로 위기에 빠진 야곱에게 명령하셨다. 그것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말씀이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이 그저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 “내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께”라고 말씀하셨을까? 이 표현을 통해서 야곱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초점을 다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야곱은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마음을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야곱이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고 예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다. 9-10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친히 만났고, 말씀을 직접 들었고, 하나님이 올라가시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가 벧엘에서 하나님께로 초점을 맞추고 예배했을 때 하나님이 만나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야곱처럼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과 만나주셨던 것처럼 만나주실 것이다. 벧엘에게 야곱에게 복을 주셨던 것처럼 복을 주실 것이다. 벧엘에서 하나님이 올라가시는 영광을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높아지시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향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돌리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께로 향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행동했다. 그것이 “버려라, 정결하게 하라, 그리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세 가지 행동이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려고 한다.


1. 내가 의지하던 세속적인 것을 버려야 한다.


2절을 보면,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했다. 여기서 “버리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하씨루’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진멸하다, 목을 베어버리다, 제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헬이 아버지 집에서 도망나올 때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다.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야곱이 세겜에 10년 동안 살면서 물들었던 우상문화가 있었다. 야곱의 가족들에게 내면까지 스며들었던 우상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진멸하라, 그것의 목을 베어 버려라, 제거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벧엘로 떠나기 전에, 그리고 벧엘에서 돌아오기 전에 실제로 그것을 행한다. 그것이 ‘묻어 버리는’ 일이다. 4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야곱은 모든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묻는 것이 나오는데, 8절이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그런데 왜 둘 다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을까? 그리고 왜 세겜에서도 상수리나무, 벧엘에서도 상수리나무일까?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상수리나무는 ‘엘론, 알론’이라고 했다. ‘엘’, 곧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상수리나무를 볼 때마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 때에도 신성이 많은 상수리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다.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 장식품들을 만드는 것이 대체로 상수리나무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야곱의 유모 이름이다.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인데, 그 이름이 ‘벌’이라는 뜻이다. 사사기에도 드보라가 나오는데, 그 이름의 뜻이 ‘벌’이다. 조직적인 본능으로 움직이는 곤충인 “벌”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사람 이름에 곤충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토템이즘이다. 동물이나 식물에 신성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이름을 짓는 것이다. ‘드보라’라는 이름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드보라는 야곱 공동체 안에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 때부터 야곱의 가족에게 벌처럼 조직적이고 신성시할 만하고 의지할 만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존재를 묻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의지하던 것, 축복과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 의지하던 것들을 모조리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한다. 자기가 의지하는 것,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소유물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벌, 능력, 외모와 같은 것일 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벧엘”의 뜻이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만 의지해야 하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아닌 것에서 만족이나 안심을 얻으려 하면 안 된다. 그런 것들을 모두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매달리신 갈보리 십자가 나무에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이나 붙잡고 매달리는 것들을 다 묻어 버려야 한다. 붙잡고 매달릴 대상이 오직 십자가 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어야 그 사람이 회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 성결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한다.


2절 중반 이후에 계속해서 말하는데,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고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또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정결, 곧 성결”을 이루라고 한다. 그런데 여호와께 성결하려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주인의 말씀에 복종하는 종이 되어서, 주인이 제시하신 기준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기준을 버려야 한다.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자기의 목적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에서도 말씀하신다. 그가 80세가 되었을 때 호렙산에서 부르신다. 그리고 처음 하시는 말씀이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는 것이다. 지금의 모세로서는 거룩한 자리에 설 수 없다. 신을 벗어야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왜 신을 벗으라고 하시나?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노예들이 신을 벗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니까 신을 벗으라는 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노예, 하나님이 종이 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성결한 사람이 되려면 완전히 하나님께 굴복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두 번째 명령이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출 4:3)는 말씀이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았다. 그렇게 의지하던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셨다. 그런데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으로 변해 버렸다. 이 때까지 모세가 의지하고 살아왔던 것의 정체가 무엇이라는 것인가? 뱀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자기가 의지하면서 살았던 것이 자기를 삼키려는 뱀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산다. 현대의 사람들이 돈이나 직장, 인맥이나 스펙같은 것을 의지해서 살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것이 바로 뱀이라는 것이다. 곧 마귀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적이지 않은 자기의 세속적인 경험이나 생각을 버리라고 하신다. 자기의 경험이나 생각에 의하면 먹어도 되고, 행해도 되고, 취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의지하면, 결국에는 뱀의 실체가 나타나서 자기를 삼켜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런 것을 버리고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하신다.


세 번째로 명령하신 것이 “네 손을 품에 넣으라”(출 4:6)는 것이다. 모세가 자기 손을 품에 넣었다 빼니까 그 손으로 나병이 올라왔다. 모세의 손이 들어갔다 나온 곳이 심장인데, 손을 넣었다 빼니까 나병이 옮겨왔다. 모세는 자기의 심장이 생명을 주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망을 배출해 내는 더러운 곳이었던 것이다. 그 심장을 가지고 살면 사랑을 못한다. 오히려 분노, 죄악, 자기교만을 배출해 내는 썩은 질병이 드러나게 된다. 이 심장의 정체란 결국 자기 중심,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죄의 발상지이다. 거기에서 미움이 나오고, 이기적인 마음이 나오고, 질투와 증오가 나오고, 거짓 사랑이 나온다. 자기를 목적으로 겨냥하는 삶이 되어서, 자기를 사랑하고 이기적인 자아를 계속해서 추구한다는 것이다.


모세가 신었던 신발, 지팡이, 가슴에서 뛰던 심장은 모세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쓰임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다. 오히려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귀하게 쓰시기 전에 모세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신다. 다 내려놓으라고 하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다시 받게 하셨다. 이것이 성결이다.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돌려받는 것이 성결이다.


하나님께서 벗어 놓았던 신을 모세로 하여금 다시 신게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팡이를 다시 들게 하셨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장을 다시 받았다. 다시 받은 심장 안에 나병 손을 넣었더니 다시 생명의 손으로 돌아왔다. 뱀이 되었던 지팡이를 다시 들었더니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고,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벗어 놓았던 신을 다시 신으니까 애굽의 바로 왕 앞에까지 걸어가게 하는 신발이 되었다. 광야 어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고 걸어가는 성결한 신이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성결하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닌 것들, 부정적인 들보들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주시는 것으로 성결하게 되어야 한다. 성도란 마음이 성결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귀하고 값있게 쓰임받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3. 마음과 믿음의 태도를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한다.


2절의 마지막 말씀이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것은마음의 자세를 고쳐 먹으라는 뜻이다. 태도를 바꾸라는 것이다. 특히 “바꾸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할리푸’는 ‘더 좋은 것으로 바꾸라, 새 것으로 바꾸라, 갱신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전보다 더 좋은 태도, 이전의 마음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갱신하라는 것이다. 이전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든지 간에, 더 좋은 방향으로 갱신하라는 말씀이다. 이전에 예배드리는 태도와 마음이 어떠했든지 간에 더욱 새로운 마음과 태도로 하라는 말씀이다.


탁월한 예전적 행위로 예배를 드리더라도, 거기에 신령과 진정을 담지 못하면 실패한 예배가 된다. 예배의 행위에 신령과 진정이 담기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기도인도자가 기도하는 시간에 함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면, 그것이 실패이다. 찬송가를 부르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없다면, 그것이 실패이다. 사도신경을 암송하고 주기도문을 암송하더라도 신령과 진정을 담지 않으면 실패이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도, 영혼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이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에 달려 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그것이 성공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어느 강의장에 가서 강의를 듣는다면, 태도와 자세는 여러분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현장에서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태도와 믿음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 캠퍼스 예배부흥운동’을 주도했던 Passion의 사역자들은, 예배의 현장에서 늘 이렇게 말했다. “We don't worship worship, We worship God”(우리는 예배를 예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우리 마음의 중심이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 마음이 믿음의 자세와 태도가 되어서 경건한 삶으로 드러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된다. 벧엘에서 하나님이 야곱과 만나고 그에게 복을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과 만나시고, 여러분 인생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여러분, 이렇게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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