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을 습관삼지 말고, 기도를 습관되게 하라(눅 11:5-13)


유명한 감리교 목화자이면서 기도의 사람이었던 “E.M. 바운즈”는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기도로 세상을 이끌어 나가신다. 기도가 많은 세상일수록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며, 기도가 많을수록 사탄을 이기는 힘도 많아질 것이다. 성도들의 기도는 세상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보급창고이다.”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원한다면 기도해야 한다. 더 좋은 가정을 원하거나 더 좋은 교회를 꿈꾸고 있다면 기도해야 한다. 자식이 좋은 자식이 되기를 원하면 기도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이 되기를 원하면 마땅히 기도해야 한다. “성도들의 기도가 세상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보급창고”라고 했다. 기도가 많을수록 창고가 풍성해지고, 기도가 없으면 창고가 비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도를 통해서 풍요로운 보급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1.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뒤에 이어서 하신 말씀이다. 기도의 내용을 알려주신 예수님께서, 지금은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고 계신다. 어떻게 기도하라는 것인가?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간절하게 요청하는 기도를 올려드리라는 말씀이다. 8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 인해서 주지는 않더라도, 그의 간청함을 인해서는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친밀감이다. 한 밤중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친구 관계가 친밀하다는 뜻이다. 특히 8절에서 “간청함”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헬라어로는 ‘아나이데이안’이란 단어이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데, 본래는 ‘부끄러움이 없는, 뻔뻔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이 사람이 한 밤 중에 뻔뻔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한 밤중에 잠을 청하고 있는 친구의 집을 두드린다고 하셨을까? 이 친구들 사이에는 친밀감이 있다는 것이다. 간청함보다 친밀함이 앞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기도에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런 친밀감이 어디까지 이어지기를 원하실까?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까지 이어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11절에서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라고 말씀하셨다.

이 친구는 후안무치하고 철이 없는 친구가 아니다. 그런데 한 밤 중에 다른 친구를 귀찮게 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친밀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처럼 친밀할 정도로까지 되라는 것이다. 기도라는 것이 이렇다.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인격적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2. 친밀감에 따라오는 신뢰감을 가져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 대한 친밀감과 함께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 약 5:17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이라고 했다.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다. 엘리야는 왜 간절히 기도했을까? 자기의 힘으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만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을까? 간절히 기도할만한 친밀함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른 부모에게 떼를 부릴 수 있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부모에게만 떼를 부린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신뢰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적당히 기도하가가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기도를 붙잡았다.

겔 3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대목이 나온다. 백성들이 본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새 영을 부어주고 새롭고 부드러운 마음을 창조해 주시겠다는 약속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뒤에 제일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것이 겔 36:37절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분명히 약속을 하셨지만, 그래도 백성들에게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이 믿음의 핵심, 기도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는데, 그 약속이 내 것이 되려면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친밀감에 따라오는 신뢰감이 없으면, 구하고 찾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고 믿으셔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하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13절에 가서 그것을 확실하게 다시 말씀하신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이 응답의 열매를 얻게 되는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10번 이상씩 통독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부유하거나 세상 권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구하는 사람에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다.

3. 주신 응답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실 때, 기도 응답은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오는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하나님은 무조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시지 않는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기 때문이며,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이 원하는 대로 주는 부모는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없다. 아이에게 유익한 것을 주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악한 자라고 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을 것을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마 7: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기록되어 있다. 구하는 자에게 구하는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응답하신다. 이 말씀을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3절) 누가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선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가장 강력한 것이 성령이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을까?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내 마음 대로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지배를 당하는 종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정말 여러분에 좋은 것이겠나? 성령님께 이끌리는 삶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일어나야 한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를 받는 인생이 가장 복되다는 믿음까지 나가야 한다.

왜 그런가? 성령께서 나의 그릇을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게 한다. 그래서 나의 그릇이 깨어지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질그릇같이 연약하다. 그래서 깨지기 쉽다. 성공하고 출세하면 교만에 깨지기 쉽고, 실패하면 낙심게 깨지기 쉽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성공해도 교만해지지 않게 하신다. 실패해도 낙심하지 않게 하신다. 이래도 저래도 끝까지 기도로 살게 하신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기도로 인생을 살게 하신다.

그래서 결국에는 의의 최종적이 승리,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를 맛보게 하신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셔야 한다. 어떤 응답이든지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