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빛나게 한다.



비전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빛나게 한다.(창 22:1-14)


예배당에 와서 말씀을 듣는데, 말씀에 설득당하는 사람은 은혜가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된다.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은 말씀이 보배가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설득당하지 않는 사람은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다. 말씀을 믿지 않고 말씀에 설득당하지 않으면, 말씀이 자기를 정죄하는 것으로 들려진다.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울 뿐이지, 그것이 생명과 진리가 되지 못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가야하는지가 분명해진다. 그것을 우리는 모리아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확인하려고 한다.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가? 왜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려 지게 되었는가? 그의 믿음을 확인하면서, 여러분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1. 아브라함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히 11장에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을 확실하게 표현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여도, 다시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들의 생명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는 믿음이 따라왔던 것이다. 생명에 대해서, ‘이 생명이 내 것이 아니구나. 내 손에 있는 생명은 죽을 생명인데, 하나님께 드려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생명을 찾을 수 있는 것이구나.’ 이 관점을 가지니까 하나님의 손에 바치는 순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활신앙이 왜 중요한가?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게 되면, 더 이상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사는 인생에서 벗어나게 된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할까?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염려하면서 살까? 부활신앙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신 것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시는데, 그것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니까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 생명을’ 붙잡고 살려고 한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사로잡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마음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면 내가 하나님을 구한다. 그래서 진짜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은 말씀이, 그 사람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말씀으로 살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다른 주인이 있는 사람,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말씀은 마음에 품지 않는다. 말씀을 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고, 하기 싫거나 부담되면 거절한다.


2. 아브라함은 대속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사망이라는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죽음에게 다 포로가 되고 먹힌바 되었다. 아들 이삭의 생명이 아브라함의 손에 있으면, 썩어지고 죽어지는 생명이 되어 버린다. 아들의 생명이 살아나려면, 그 아들이 죽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대신에 대속의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다. 우리가 생명을 드리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생명에서 구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어떤 노력이나 선한 의지로도 죄를 이길 수 없다. 모든 육체가 다 죄에 지게 되어 있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죄의 권세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죄의 값을 갚으려면 내 생명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 그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대속의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예수님께 맡기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대속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속의 믿음을 가질 때, 바울이 롬 8:32절에서 말했던 고백이 믿어지게 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아들로 하여금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셨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분이다.


성도란 이것을 믿어야 한다. 대속을 믿는 신앙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내게 좋은 것으로 역사하신다는 믿음이다. 좋은 것, 어떤 삶이 우리 안에 들어와도 좋은 것으로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란다. 내 생명을 내가 쥐고 있어서는 하나님께 갈 수도 없고, 이 육체 안에 생명을 한 시간도 늘릴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자기 생명을 자기 손에 들고 있지 말고,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라는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면 된다. 자기 생명을 맡기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모든 주도권을 맡겼다.


8절에 보면,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친히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도하신다는 믿음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성급하게 시작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식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주도권을 이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도 없는 우리 일을 도와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일을 계속해서 이루어 가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하고, 그 일에 참여하게 하시는 분이다. 주도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였다고 하면서도, 자기 생각과 자아의 의지를 추구할 때가 많다. 사람들이 기도에 실패하고, 믿음에 실패하는 이유도 하나님보다 자기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기보다 ‘자기’가 주도권을 쥐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게 하시는 일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실 때 성도가 비로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영향력이 있는 삶, 주님이 주시는 비전으로 세상을 찬란하게 빛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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