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 따라 살면 후회가 남지 않는다.(눅 19:16-26)



유진 피터슨은 “The Message”라는 책에서 히브리서 12:1-2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했다. “길을 개척한 이 모든 사람들, 이 모든 노련한 믿음의 대가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그들이 열어 놓은 길을 따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달려가십시오.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군살이 붙어도 안 되고, 몸에 기생하는 죄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여기서 노련한 믿음의 대가들이 열어놓은 길이란 어떤 길인가? 그 길은 믿음의 길이며, 사명의 길이다. 우리 성도들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걷는 차원을 뛰어넘어서 달려가라고 했다. 절대로 멈추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믿음의 길에서 멈추게 되면, 영적으로 퇴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군살이 붙으면 안 되고, 기생하는 죄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군살이 붙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영적인 군살에는 무감각하다. 그러나 신자는 육체를 위해 힘쓰는 것 이상으로 영적인 일에 힘써야 한다. 그게 사명의 길이다. 오늘은 청지기 주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우리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붙잡으시기 바란다.

1. 열 므나 이야기에 담겨진 핵심이 무엇인가?

오늘 말씀은 은화 열 므나에 관한 비유이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나라로 가면서 10명의 종을 부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똑같이 은화를 한 므나씩 주면서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한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에게 결산하도로 했다. 먼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이 나온다. 그러자 주인은 칭찬해 주면서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한다. 두 번째로 한 므나를 가지고 다섯 므나를 만든 종이 나온다. 그러자 주인이 역시 칭찬해 주면서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한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종이 나온다. 그러자 주인은 종을 책망한다. 그리고는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종에게 주라고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은화 열 므나의 비유이다. 마치 마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똑같은 말씀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확실히 다른 것이 있다. 그래서 본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려면, 달란트 비유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두 비유가 비슷한 내용을 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하게 다른 것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 것인가? 마태복음에서는 종들에게 준 달란트가 각각 다르다. 그들에게는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가 주어졌다. 그런데 상급은 똑같이 주어진다. 다섯 달란트를 남겼든 두 달란트를 남겼든 주어지는 상급은 같다. 주인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달란트란 재능을 의미하는데, ‘탤런트’의 어원이 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그릇과 재료에 따라서 다른 재능이나 은사를 주셨다. 그것으로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했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므나 비유”에서는 므나가 똑같이 주어진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재능에 따라 다르게 받았는데, 므나 비유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게 ‘한 므나’씩 받았다. ‘므나’라는 말이 본래 ‘셈하다’라는 뜻이다. 다니엘서에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단 5:25)이라고 할 때 나오는 “메네”가 ‘므나’이다. 바빌론의 벨사살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있었는데, 벨사살이 그것을 망각하고 교만해졌을 때 “메네”라는 말씀이 벽에 쓰여졌다. “하나님이 세신 바 되었다. 세신 바 되었다”는 말인데, 하나님이 계수하신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는데, “주신 것을 달아보신다”(결산하신다)는 말씀이다.

모든 종에게 똑같이 한 므나를 주었다는 것은, 모두에게 하나의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세상을 산다. 그러면 그 생명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겠나? 한 므나를 가지고 잘 다스리고 활용해서 열 므나를 남기면,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다. 즉 한 므나로 열 명의 생명을 구원하면, 열 고을을 다스릴 상급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생명은 누구나 똑같이 한 므나씩 받았다. 그런데 내게 주신 한 므나(한 생명)으로 10명도 구할 수 있고, 100명도 1000명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받은 달란트에 합당하게 쓰임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생명으로 더 큰 구원의 열매를 내야 하는 것이다. 단 12: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다. 내게 재물이 있으면 재물로, 주신 것이 있으면 주신 것으로 생명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상급받는 길이다.

2. 실패한 사람에게서 얻는 교훈이 무엇인가?

주인은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 책망했다. 24절에 보면,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라고 했다. 왜 그는 주인에게 “악하다”는 평가를 받았을까? 20절에서, 이 종은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가져왔다고 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주인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21절,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그는 주인을 평가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었다. 종은 주인을 못된 사람으로 오해했다.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오해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두 가지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하나는 벌을 받지 않으려고, 모험적이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모험을 하기보다 안정적이지만 있는 것이라도 지키자는 태도이다. 이 종은 후자를 선택했다. 다른 종들은 어떻게 했는가?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를 했다. 그들 중에도 책망받은 종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주인을 엄하게 생각하고 두려운 존재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받은 것을 가지고,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13절,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주인은 장사를 하라고 했지, 다른 것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칭찬받은 종들의 핵심은 순종에 있었다.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한 므나로 하나를 남긴 사람이나 세 개를 남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또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해서 본전이었던 사람이나, 오히려 손해를 보았거나 한 사람의 이야기는 없다. 핵심은 주인의 말씀대로 장사를 한 사람과 장사를 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순종한 사람과 순종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순종한 사람은 성공했고,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실패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비평이 없다. 반면에 실패한 사람은 주인에 대한 비평만 있다. 여러분, 비평이 꼭 나쁘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부분 실패로 가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16번째 편지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시나? “평가”이다. 베테랑 악마가 신참에게 가르쳐준 교훈이 무엇이었나? “신자를 교회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교회를 평가하면서 분열시키는 사람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신자를 교회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악마의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비평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분열시키게 하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평가였기 때문에 실패했다. 반면에 성공한 사람들은, 비평가가 아니라 순종의 사람들이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청지기들이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대해서 “Yes, God”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주님이 무엇을 하시든지 간에 저는 따르겠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저는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참다운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온전히 드리게 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 성도는 온전히 자기를 드려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삶이 기적이 되고, 기도가 열매가 되는 것이다.

3. 어떻게 사명의 성취자가 될 수 있을까?

릭워렌 목사님이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말했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성도에게는 각자의 사명이 있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은 거기에 합당하게, 또 집사는 집사로서, 성도는 성도로서의 사명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겠나?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선은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 참된 믿음은 강력한 실천력이 있다. 믿음에 따라 살고 행한다. 그런 사람이 순종의 열매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아는 것에서 멈추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힘이다. 우리는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아는 것에서 믿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믿는 것에서 순종하는 실천력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사명을 성취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명에 따라서 살아낸 사람에게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다.

실천력과 더불어 가져야 하는 것이 높은 가치이다. 일종의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목표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회가 차원이 낮은 상태에 있으면 불화하기 쉽다. 내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데, 그러면 가나안이 없을 때 불평한다. 광야일 때 원망하고 비난한다. ‘내가 은혜 받아야 하는데, 내가 잘 되어야 하는데, 내가 편해야 하는데, 내가 드러나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내가 채워지지 않을 때” 원망과 비난과 불평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설교를 비평하고, 교회를 비평하고, 채워지지 않는 자아의 욕구 때문에 불만족스럽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높은 가치를 향해서 함께 나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성도도 사명을 성취하는 공동체가 되고 개인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순종의 실천력과 높은 가치 의식으로, 올해 우리 교회가 더욱 풍성한 사명의 성취, 복음의 성취, 영광의 성취를 이루게 되기 바란다.

기독교 대한감리회 신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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