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은 기회를 만들고, 신실은 열매를 얻게 한다.(마 25:14-30)


재산과 성실로 얻은 기회

주인이 타국으로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맡겼다. 무엇을 기준으로 맡겼냐면 “재능”이다.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이 되는 ‘뒤나미스’가 사용되었다. 재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재산을 맡겼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어떻게 자기의 재산을 맡길 수 있었을까? 재능만 보고는 재산을 맡길 수 없다. 그들이 성실한 종들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재산을 맡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재능과 성실”이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열매를 얻고 칭찬을 받은 사람이 있고, 반대로 책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책망이 책망으로 끝났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책망받은 종은 자기에게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쫓겨났다. 그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빼앗기고, 밖으로 쫓겨났다. 그가 달란트를 받지 않았다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종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칭찬받은 종들은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의도를 신뢰했다. 주인이 그만한 달란트를 맡길 때는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의 특징을 16절에서,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라고 표현하셨다. 그들은 말씀이 떨어진 뒤에 곧바로 순종했다. 자기들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았다. 주인의 말씀을 믿고 바로 순종했다.

그러니까 주인이 그들을 칭찬하는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21절, 23절)라고 칭찬했다. 여기서 “충성”이란 말이 모두 ‘피스토스’이다. 종들이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실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성실이 주인에게 기회를 얻게 했다면, 그들이 가진 신실함(즉, 믿음)이 그들에게 열매를 얻게 했다.

순종하지 못하면 책망을 받는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책망받는 종이 되었다. 그는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그대로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24절을 보면,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했다. 이 사람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주인의 뜻을 해석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해석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기의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주인인 “불합리한 사람, 불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주인을 오해하니까 어떻게 되었나? 25절을 보면,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염려와 걱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청지기로서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했다. 주인이 주었던 기회를 열매로 얻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 분들이 있다. 자꾸 뭐를 해석하려고 한다. 무슨 일을 맡기면 해석하려고 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지? 왜 내게 이런 일을 맡기지?” 여러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순종하려고 해야 한다. 해석하려고 하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생기면 마음에 근심이 들어온다. 그러면 직분도 사명도 안 되는 것이다.

주인은 그를 성실하다고 생각해서 자기의 재산을 맡겼다. 그러나 그는 주인과의 관계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자아의 잘못된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10명의 실패한 가나안 정탐꾼들이 자기의 생각에 갇혀서 실패했던 것과 똑같다. 그들은 성실한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에 정탐꾼으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신실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환경에 눌리고, 문제에 눌리고, 자기의 생각에 눌렸다. 그래서 실패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성도는 언제나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고, 말씀에 대해서 신뢰해야 한다. 마지막 때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19절을 보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주인과 종들이 결산할 때가 되었다. 여기에 “오랜 후에”라는 표현이 있다. 달란트를 남긴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달란트를 불려 나갔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은 지속적으로 맡겨진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맡겨진 달란트에 관심하고, 그것을 계속 사용했다. 반면에 악한 종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땅에 묻어두고 관심을 끊어버렸다. 여기를 주목해야 한다. 성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끊어지면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믿음, 신실함이 열매를 얻게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딤후 4: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고 분명히 말했다. 헬라어로는 ‘유카이로스’와 ‘아카이로스’이다. ‘유카이로스’는 ‘좋은 기회’란 뜻이고, ‘아카이로스’는 ‘나쁜 기회’란 뜻도 있다. 여러분에게는 좋은 기회도 있고 나쁜 기회도 있다.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고, 그와 반대로 말씀을 전하기에는 나쁜 기회가 있다. 항상 그 둘이 여러분 앞에 놓여진다. 그런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좋은 기회에만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쁜 기회 앞에 놓였더라도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기에 좋은 기회가 있다. 건강도 좋고, 재물도 있고, 상황이나 환경도 좋은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일 때도 있다. 건강도 나쁘고, 재물도 없고, 환경도 그렇게 좋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좋은 기회일 때만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쁜 기회에서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하고, 주신 것을 땅에 묻어두면 안 된다.

바울은 고전 4:2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다. 맡은 자들이 지식이나 지혜를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 맡은 자들이 능력이나 힘을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 맡은 자들이 인간관례나 재물이나 권세를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 “맡은 자들이 충성”을 구하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충성”도 헬라어로 ‘피스토스’이다. 그러니까 충성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실실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을 할 수 있겠나? 믿음이 충만한 사람,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결국 믿음이 답이다. 성도는 끝까지 신실함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