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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물들면 야망이 보이고, 믿음에 물들면 사명이 보인다.(출 13:1-10)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오늘 읽은 말씀에서 무교절과 관련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붙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하나님은 그 달을 첫째 달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력으로 1월을 ‘니산’이라고 합니다. ‘니산’이란 말이 ‘출발한다, 길을 떠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이달 14일, 종교력으로 니산월(즉, 1월) 14일이 유월절입니다. 그 다음 날인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 동안을 무교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무교절의 시작이 유월절이고, 유월절의 완성이 무교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절기의 시작은 “초태생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10번째 재앙이 초태생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엄청난 심판과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라고 초태생 규례를 주셨습니다. “초태생 규례”란 초태생을 모두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출 13: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태생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을 떠나보내고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논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묻는 이유는, 제가 어릴 때는 이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고 자기의 소유로 삼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낸 다음에, ‘당신을 내가 구해줬으니, 이제부터 내게 생명을 바쳐야 한다.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노예다.’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깨닫고 보니까, 이게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신다는 것이 은혜이지 않습니까? 어떤 왕이 노예로 비참하게 살던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는 나의 소유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보장하겠다.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주겠다. 내가 너의 산성이 되어 주겠다. 내가 너를 지키고 보호해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억압입니까, 은혜입니까? 은혜입니다.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보장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게 해결되고, 깨달아야져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미 해결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아직 이것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해결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즉 이 진리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내가 십자가의 은혜로 생명을 구원받았다고, 어떻게 나의 생명과 삶이 주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 구원과 별개로, 내 생명과 삶은 나의 것이야!’라고 하게 됩니다.

무교절의 의미, 과거와 단절하라.


이스라엘의 초태생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신 말씀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구속과 억제가 아닙니다. 은혜와 긍휼입니다. 여러분이 악한 자의 소유라면 부끄러워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권세있고, 능력있고, 선하신 분의 소유라면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교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하그 함마초트”입니다. ‘하그’는 ‘축제’라는 뜻이고, ‘함마초트’는 ‘그 누룩을 넣치 않은 떡’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한자로 “무교병”입니다. ‘누룩이 없는 떡’이란 말입니다. 이 절기에, 그 떡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교절입니다.

6절을 보면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당시를 기억하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7절에서는,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누룩을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은, 누룩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누룩”이란 죄악된 본성을 상징하는 메타포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모든 더럽고 죄악된 본성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애굽에서 더럽고 부패하게 살았던 삶을 완전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누룩”을 교회 안에 있는 더러운 죄악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거짓 교훈”을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교훈과 결별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교절의 의미는 하나님이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죄와 결별하고, 거짓된 교훈과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 구원의 은혜를 자식들에게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9절)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항상 말씀을 간직하고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입에 있게 하라”는 것은 율법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고 암송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삶의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서, 말씀으로 표를 삼고, 말씀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단절하고, 말씀에 붙잡히라.


마귀는 거짓된 교훈을 성도들에게 자꾸 뿌립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알곡들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가는 원수와 같이 합니다. 그래서 거짓된 말씀, 가짜 교훈을 가지고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영혼을 타락시켜 버립니다. 롬 16:17절 이하를,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롬 16:17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배우고, 알고, 믿는 진리를 거스르는 가짜 교훈이 있습니다. 그 가짜 교훈이 성도를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 가짜 교인들은 성도들을 분열시킨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되면 마귀의 권세를 멸하고, 지옥으로 들어갈 영혼을 구원하는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갈라지게 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둘째는 “거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눅 17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그때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헬라어 ‘스칸달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롬 16:17절에서 “거치게 한다”는 말이 ‘스칸달라’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의 특징이 성도들을 실족하게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좋은 이야기, 덕이 되는 이야기, 영적인 간증과 위로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귀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실족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 믿음을 떨어뜨리는 이야기, 용기를 떨어뜨리는 이야기를 해서, 영적으로 실족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가짜 교훈을 가진 사람들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롬 16:18절에 나옵니다. 롬 16:18절을 보면,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라고 했습니다. 가짜 교훈의 세 번째 특징은 “자기를 위해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다. 그리스도의 기쁨이 아니라,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 삽니다. 그리스도의 만족이 아니라,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삽니다. 그래서 교회가 분열되고 성도들이 실족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만족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자기 만족을 구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것과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무교절의 교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옛 성품, 옛 자아, 옛 사람의 죄악된 습성과 다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것을 생각하고, 말씀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과 삶이 어디에 붙잡여 있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세상에 물들면 야망이 보이고, 믿음에 물들면 사명이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붙잡혀서 세속적인 생각에 물들면,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망이 보입니다. 그 야망의 성취를 위해서, 다른 사람이 죽어도, 상처를 받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의 야망이 보이는 대로, 율법적 자아가 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공로에 붙잡혀서, 믿음에 물들면 다릅니다. 믿음에 물들고, 말씀에 물들면, 비전이 보이고 사명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 존재의 사명, 구원받은 자의 사명,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9절을 다시 보십시요. “손과 이마”에 기호와 표를 새기라고 했습니다. 왜 손과 이마일까요? 손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모든 행동이 말씀에 따라서 나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마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정신이 세상에 물든 정신이 아니라, 말씀에 물든 정신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신이 되게 하고, 말씀이 행동(즉, 삶)의 기준이 되게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성도란 그렇게 말씀의 정신으로,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인되셔서, 여러분의 모든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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