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가장 어렵지만 가장 복된 것이다.(마 4:12-22)


주님의 역사는 연약한 곳에서 시작된다. 마 4:12절에서,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고 했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지역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다. 직업도 다양해서 상인, 어부, 농사꾼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다. 그러니까 여러 이방적인 문화가 뒤섞여 있었다. 그 갈릴리 지역이라고 하면,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을 모두 포함하는 팔레스틴 북부 전체를 말한다. 이 모든 지역은 당시에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소외되고 배척당했던 지역이란 뜻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소외받은 지역, 연약한 곳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태어나신 곳은 보잘 것 없는 도시 베들레헴이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곳은 소외된 도시 갈릴리였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연약한 곳이었다. 연약한 곳으로 가서, 연약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권세를 보여주셨다. 그들과 친구가 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것처럼,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6)는 말씀과 같았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주님은 어둠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되신다.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모르는 혼돈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걸음을 인도하시는 빛”이 되신다. 그러니까 성도란 주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인가?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던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들을 향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5:17)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세례 요한은 그림자를 보고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천국의 실체였다. 예수님이 본질상 천국이셨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미 “천국”이신 예수님께서 ‘여기’에 와 있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천국으로의 초대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진리가 있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 나라에 입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초대를 받아서 들어가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겠나?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한다. 회개가 없이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믿음의 영역에서는 회개가 우선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회개를 먼저 이야기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것과 최고라고 하는 ‘자기 옳음과 자기 의’를 꺾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다. 회개란 방향전환이라고 했다. 죄를 안 짓는 것이 회개가 아니다. 내가 주인 노릇하고 있는 ‘자기 의’의 상태가 깨어지는 것이 회개이다. 내가 주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행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 자기의 주인됨이 깨져서 방향이 하나님께로 돌이켜지는 것이 회개이다. 그렇게 자기의 주인됨이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닫힌 눈과 닫힌 귀를 열어주신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의와 하나님 나라의 일이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자기 의’ 때문이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믿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매일 매일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믿고, 자기 귀로 들은 것을 확신한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나? 복음을 들어도 자기가 경험하고 배운 인식의 프리즘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인다. 예수를 받아들여도 자기의 프리즘을 통과한 예수이다.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 형상이 아니라 내 지식과 경험과 가치를 반영한 예수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를 믿고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성도는 세례 요한이 외쳤던 말이나, 본문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외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2. 말씀이 진리가 되어 살아있게 해야 한다.


마 4:18절 이하에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짧게 기록되어 있다. 이와 평행 본문이 눅 5장에는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눅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의 배에 올라타셨다. 그리고는 그 배를 타고 물로 나가신다. 그런데 베드로의 상태가 어떠냐면 빈 배를 정리한 상태이다.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성공을 건져 올려서 풍요로운 배가 아니다. 눅 5:5절을 보면,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얻은 것이 없는 ‘빈 배’이다.


예수님은 왜 빈 배에 찾아오셨을까? 만선으로 기쁨이 가득한 배에 오르셨으면 안 되는가? 성공에 대한 만족과 기쁨이 있을 때, 더 여유롭게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공한 배에 오르신 것이 아니었다. 빈 배에 오르셨다. 실망과 좌절의 배, 허탈과 실의에 빠진 “빈 배”로 찾아오셨다. 그 이유가 있다. 연약하고 낮아진 심령이 되었을 때가 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이다.


팔복에서 천국 복음의 시작이 이렇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빈 배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목마른 인생에게 천국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지 못할까?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는 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욕망과 목적으로, 자기의 생각과 염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세속적인 욕망이나 자기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더니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에게 명령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고, 베드로는 어부이다. 물고기 잡는 일에는 베드로가 훨씬 전문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대답했다. 눅 5:5절,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자기의 빈 배가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빈 배에 가득 채워져서 진리가 되니까 상식을 뛰어넘는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인데, 일반적인 상식보다 말씀을 따라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말씀이 베드로의 안으로 들어가니까 자기의 방법, 자기의 생각, 자기의 목적과 욕망이 빠져 나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말씀이 그 답이다. 말씀이 인생의 관건이다. 말씀이 채워지고 나니까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사셔야 한다.


3. 어려워도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했다. 성도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인생인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이 세워진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는 믿음에 합당하게 순종해야 한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순종이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에도,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제자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단어가 “곧”이란 단어인데, 즉각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말씀이 들어가서 변화되면 처음 나타나는 증상이 순종이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축복받는 자리가 순종의 자리이다. 그런데 또 가장 힘든 자리가 순종의 자리이다. “자기 생각이나 자기 합리나 자기 이성과 자아”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으면 순종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런데 말씀이 들어가서 변화되면 순종하게 된다. 어려운 상황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태인데도 순종으로 나간다. 그리고 순종으로 하는 사람들이 축복받는다.


주님을 따르는 순종은 “알고 나서, 이해하고 나서” 순종한 것이 아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라. 어떤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설득하는 장면이 없다. 무엇인가 설득력 있는 상황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무조건 순종하는 제자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순종하는 자들이 정말로 알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 길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인지, 그 깊이를 순종하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 때, 물이 포도주가 된 사연을 안 사람은 물을 떠다 준 종들뿐이었다. 아무도 몰랐다. 영문도 모르고 이치에 맞지도 않았지만 순종한 종들만이 그런 신비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순종하는 자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이다.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꾼이 된다. 순종하는 자들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순종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찾으시기 바란다.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그 자리를 향해서, “곧바로”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성도로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