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련은 절망이 아니라, 도전을 위한 것이다.(마 22:23-33)


부활은 실재적이며 영원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이 사두개인들을 닮아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옷을 벗기고 양복을 입힌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그들이 들고 다니던 책 대신에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들게 하면,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현대 도시인의 모습입니다. 현실 중심, 이성 중심, 합리적 사고 중심으로 사는 현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일단 2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렇게 됩니다. 오해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0절에서는,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33절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십니까,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까?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들은 어떤 존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분명히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하나님과 여전히 교제하는 중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실재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부활이 실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신앙이 구원의 전제이다.


사두개인들은 당시 유대인이 생각했던 부활 신앙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에 따르면, 사람이 죽은 후에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하던 결혼 생활이 부활 이후에도 이어질 것을 전제로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 후에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30절에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잘못되었습니까? 믿음이 없으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는 것을 전제로 질문하니까 잘못된 질문이 나갑니다. 부활 신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믿지 못하면,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따르면, 구원은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시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이 중요한 주제는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 받게 하시려고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를 새생명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고전 15:20절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살아나사”라는 동사는 완료시제로 표현되었는데, 그것은 “그때 살아나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시련과 고난은 도전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믿으면, 우리 인생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살고 죽는 문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제 성탄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신앙이 내 안에 있을 때, 그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이루어지고, 무엇이 이루어지게 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주 예수님 탄생의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시련과 고난은 절망이나 낙심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련은 도전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나의 힘으로는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시면 다 됩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면, 변화와 기적의 능력이 반드시 체험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여러분의 시련을 소망으로 바꾸신다는 의미입니다. 좌절과 절망은 기쁨과 영광으로 바꾸신다는 뜻입니다. 사망과 저주를 생명과 축복으로 바꾸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성탄의 진짜 의미입니다.


지금은 시련이라도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뭐가 쫌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기대하고 소망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인생의 문제들로 인해서 고민과 염려가 있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 여러분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믿음으로 성탄을 맞이하는,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Comenta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