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해서 축복을 이끌어 내실 때가 있다.(출 14:21-25)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면서 모세를 원망했다. 그러나 모세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두려움에 빠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향한 악의 도전에는 한계가 있다. 이 세상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부터 구원해 주셨다. 그러니까 성도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신 약속하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믿음으로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나와 함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인내로 승리해야 한다.


1. 하나님이 막다른 길에 서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출애굽 백성을 이끌어서 장막을 치게 하신 곳이 바닷가이다. 이렇게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신 이유가 출 14:3절에 설명되어 있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두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앞에는 바다로, 뒤에는 애굽의 군대로 이스라엘을 가두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갇혀 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방이 꽉 막힌 곳으로 이끄실 때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그들은 서둘러 애굽을 탈출했고, 이제 숨을 돌리고 쉬려고 장막을 쳤다. 그런데 잠깐 쉬려고 했던 곳이 죽음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여러분을 절대적인 장벽 앞에 서게 하실 때가 있다. 사업에서 장벽을 만나고, 건강에서 장벽을 만나고, 물질생활에서 장벽을 만나고, 어떤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장벽을 만나게 하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홍해 앞에 서게 하신 것이 정말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었던가? 그들을 죽게 하려는 뜻이었던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홍해는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구원의 장소였다. 출애굽 백성들이 만났던 인생의 장벽은 기적의 장소였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장소였다. 인간의 안목으로 보면 막다른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시선에 따르면 완벽한 구원의 길이었다. 홍해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완벽한 구원을 체험했다.


“벼랑 끝 인생, 막다른 인생”이란, 여러분이 혼자서 살아갈 때나 그렇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에는 막다른 길이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게 길을 내시며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 그러니까 사방이 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될 때, 여전히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거기가 “막힌 담”이 아니라 “기적이 체험되는 곳”이라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실 구원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2. 기도응답이 올 때까지 초조해 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출 14:13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기서 “가만히 서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히트야츠부’인데, ‘너회 스스로를 나타내라’는 뜻이다. 무엇을 나타내라는 것인가? 믿음이다. 두려운 상태에 내버려두지 말고 믿음을 나타내라는 뜻이다. 불평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볼 수 있는 믿음을 세우라는 뜻이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믿음을 키우라는 뜻이다. 성도란 두려움이나 원망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믿음을 단단히 세워서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가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다.


21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모세가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을 일으키셨다. 그 바람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밤새도록 강한 바람이 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에 22절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라고 했다.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행진하는데, 그들의 좌우에 물벽이 세워졌다. 무엇이 물벽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강한 바람이다. 강한 바람이 밤새도록 계속해서 물을 밀어내면서 물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지속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홍해의 기적을 보면서, 정말로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밤새도록 이스라엘을 돌보시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강한 바람 속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신비로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이스라엘은 그토록 강력한 바람을 뚫고 행진할 수 있었는가? 강력한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그들이 행하는 길에는 바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행진하는 길은 마른 땅이 되었고, 그들이 통과하는 통로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물벽과 마른 땅은 완전히 그들을 위해서 조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니까 22절에서 “벽이 되니”라는 말이 원래 히브리어로는 ‘라헴 호마’이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라헴’이란 단어를 해석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에게, 그들을 위해서’란 뜻이다. 바람과 물벽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고, 은혜이고, 기적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역사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세상의 권세가 그들을 침범할 수 없었다. 위협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애굽의 군대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홍해는 그들에게 좌절감을 가지게 할 만한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침범하거나 실제적인 위해를 가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그 어떤 위협도 인생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초조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시는 분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3. 불평과 원망을 기도제목으로 바꾸면 기적을 체험한다.


하나님은 단번에 홍해를 가르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밤새도록 바람이 불게 하시고, 밤새도록 바다가 물러가게 하셨다. 그 밤에, 그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밤새도록 바람이 불면서 바다가 물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밤에 모세가 “밤새도록” 손을 들고 있었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밤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기도이다. 그렇다. 그들도 모세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아니면 자기들을 구원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밤새도록”이란 그들의 원망이 기도로 바뀌고, 불평이 기도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불평과 원망이 기도로 바뀌는 순간에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21절,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바람의 끝에 바다가 어떻게 되었다고 했나? “물이 갈라져 마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고 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기도로 바뀌었던 시간 속에서 기적이 나타났다. “물이 갈라져서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른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바’는 사막처럼 건조한 땅을 뜻하는 단어이다. 왜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하바라’(즉, 메마른 땅)으로 만드셨을까? 남녀노소가 누구라도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없이 가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라바’는 어린 아이가 건너기에 적합한 땅, 노인들이 건너기에 적합한 땅, 병자들까지도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땅이다. 모든 사람들이 발바닥에 물을 묻히지 않고 건너기에 적합한 땅이다. 모두가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땅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사역에는 불완전함이 없다. 언제나 완전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적합한 시간에 역사하시는 은혜이다. 언제 그렇게 역사하시는가? 불평과 원망이 기도로 바뀌는 순간에 그렇게 역사하신다. 부정적인 감정이 기도로 바뀌는 시간을 통해서 그렇게 역사하신다. 그러니까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에서 벗어나셔야 한다. 불평이나 원망이나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서 벗어나시기 바란다. 갈등이나 다툼이나 미움이나 시기심도 마찬가지다. 수치감이나 실패와 낙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이 마음에 틈타려고 할 때마다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