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십계명2_데칼로그, 생명의 길이 시작되었다.2 (출 19:1-6)



다윗은 시 20:7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세상 사람들은 병거나 말을 의지하더라도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 요구된 것이 바로 이런 믿음이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면 주변의 강대국들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도 그들은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었다. 아무리 강대국이 강하여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임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앞에 물어야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어야 했고,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데칼로그, 즉 10개의 말씀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이끌고 싶어 하셨다.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정말로 복된 나라와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목적을 가지셨다. 그것을 데칼로그, 아세레트 핫데바림을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아세레트 핫데바림의 목적이 출 19:5-6절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위의 말씀이 목적이다. 말씀을 잘 듣고 지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것이다. 오늘은 바로 그 목적, 아세레트 핫데바림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1.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다.


“소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쎄굴라’가 ‘소중하게 간직된 사유재산’이라고 말씀드렸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특별한 보물’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귀중한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특별한 것이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쓴 동화인 [You are Special]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지. 그리고 난 네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단다. 기억하거라. 내가 너를 만들었기 때문에 넌 매우 특별하단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자기 백성의 삶은 온전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래서 구원하시는 것이고, 그래서 인도하시는 것이고, 그래서 보호하시는 것이다. 옛날에 다윗은 믿음으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편 138:8절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고 했다. 여기서 “나를 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빠아디’는 ‘내게 관계된’ 이란 뜻도 있다. 그리고 “보상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그모르’는 ‘완성하다, 완전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나와 관계된 것을 완성하시다. 완전하게 하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KJV은 “The LORD will perfect that which concerneth me.”라고 번역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이나 인격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만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삶도, 성도의 가정도, 성도의 기업도, 성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랑하는 이웃도 완전하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인 교회도 완전하게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삶이 이렇게 은혜가 충만한 삶인 것이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유의 가치는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도 달려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엄청나게 달라진다. 힐튼호텔의 창립자인 콘래드 힐튼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그는 한 강연에서 쇠막대기를 들고 이렇게 강의했다. “이 쇠를 두들겨 말굽으로 만들면 10달러 50센트의 가치가 된다. 이것으로 못을 만들면 3,250달러의 가치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시계의 부속품으로 만들면 250만 달러의 가치가 된다.”


똑같은 쇠라고 해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삶이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복되고 존귀한 삶이 되는 것이다. 출 19:6절을 다시 보라.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제사장 나라”라는 말이 ‘맘레케트 코하님’ 이라는 히브리어인데, ‘코하님’은 ‘제사장들’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그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그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제사장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제사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헨’은 ‘세우다, 정착시키다’라는 뜻의 ‘쿤’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제사장이란 본래 ‘서 있는 사람, 봉사하거나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을 봉사하거나 돕는 사람이다. 사 61:6절에서는 제사장을 ‘봉사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사 61:6)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도우라는 말일까? 제사장이 라틴어로는 ‘폰티펙스’라는 말인데, 이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사장’이란 이쪽과 저쪽을 닿도록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세상이 하나님과 단절되고 끊어졌다. 그렇게 끊어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세상 사람들을 이어주는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3.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


이렇게 주님의 소유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제사장이 되어서, 자기의 생명을 주님께 드린다. 그렇게 주님께 자기를 드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 다음으로 나오는 말씀이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또 놀라운 말씀이다. 왜 그런가?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이란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어도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시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피조물의 거룩함이다.


갈 2:20절 말씀을 기억해 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가 되면, 곧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를 못박아 죽인 자가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와서 사시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내 안에”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엔 에모이’ 인데, 이 말은 ‘나의 심령 안에’라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는 ‘나의 모든 생애 속에’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생애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이어지는 고백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이상 자기의 이성과 의지로 살지 않는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뜻대로,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은혜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서,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연합이다.


피조물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다.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런 놀라운 신비가 있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 이후에,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신다. 제사장을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법과 정결규례를 말씀하신다. 이유가 무엇인가? “거룩”이다.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게 하시려는 까닭인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의 진짜 목표가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연합을 이루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신앙이 여기까지 도달해야 한다. 아세레트 핫데바림, 이 놀라운 구원과 사랑의 말씀을 읽어 나가면서 이런 놀라운 믿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시기 바란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