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걸었던 믿음을 따라간 사람



아버지가 걸었던 믿음을 따라간 사람(창 26:12-25)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부모님에 의해서 우리의 육체가 조성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신학자인 칼바르트도 그의 저서인 [교회 교의학]에서, “부모는 하나님의 대표자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라고 표현했다.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신 5:16절에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삭의 생애를 잘 관찰해보면,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던 사람이다. 아버지의 신앙여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하나님 신앙하는 삶을 살아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이삭은 아버지의 믿음을 그대로 따라간다.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삭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가 좇았던 믿음의 길, 그가 계승했던 신앙의 유산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이삭이 농사를 지었는데 복을 받았다.


이삭은 애굽으로 가지 말고 가나안에 머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이삭은 블레셋 땅에 안주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2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유목민이었던 이삭이 한 곳에 정착해서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든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배우는 일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가 먹고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배운다. 그런데 자기가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동안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사업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삭이 그랬다. 그는 자기가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일과는 다른 일을 했다.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엄청났다. 12-13절,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그가 거기서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처음 농사를 지어보았으니까 그랄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러면서 그들을 따라서 흉내를 내본 것이다. 그런데 그 해에 백 배나 얻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 하나님이 약속하고 계획하신 것을 마침내 이루셨다는 말이다.


그가 이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만져 주실 때, 무엇이든지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잠 16:13절에서도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면서 복을 얻었다.


2. 이삭은 시기와 미움도 믿음으로 이겨냈다.


이삭이 부자가 되었는데, 그 땅에 살던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처해지게 된다. 14절,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이겠나? 자기 능력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얻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잘 짓지도 못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이다. 오랜 동안 농사를 지었던 자기들보다 더 많은 열매, 더 질 좋은 열매를 맺으니까 시기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삭의 생명 근원이 되었던 우물을 막아 버린다. 15절,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그런데 블레셋 사람이 시기해서 이삭의 생명 근원이 되는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런데 이삭의 반응이 묘하다. 그들과 다투지 않는다. 이삭의 군대는 나름 힘이 있는 군대이다. 아브라함 때부터 훈련되었고,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싸워서 승리했던 전통을 가진 용감한 부대이기도 하다. 그런 힘을 가지고도 자기를 시기하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는다. 실제로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무엇이라고 말했나? 16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이 그랄 땅에 살고 있는 자기들보다 훨씬 강대하다는 말이다. 그냥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그들보다 훨씬 강력한 파워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랄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삭을 미워했다. 27절,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라 하였거늘” 이삭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 세상에게는 미움을 받았다. 세상이 이와 같다. 세상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마귀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삭은 평화를 사랑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 전적인 신뢰와 의탁을 드러내면서 산다. 그는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다. 떠나라고 하면 그냥 말없이 떠난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떠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자신감이 있으면 이렇게 할 수가 있다. ‘자리를 옮겨서 다시 우물을 파자, 하나님이 이전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이런 자신감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무엇을 잃어버렸더라도, 이전보다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게 더 좋은 것, 더 좋은 일이 오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으면 그렇다.


3. 이삭은 아버지의 믿음을 유산으로 계승했다.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낙심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성도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했다. 성도란 어떤 절망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삭은 세상이 자기를 괴롭힐 때,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파고,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우물을 부른다. 이게 무슨 뜻인가?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그의 믿음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버지가 따랐던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고, 그의 믿음과 신념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르면서,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영적인 표징들,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의 역사들을 기억해 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하나님을 생각했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우물을 파면서, 하나님은 망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인생여정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열매를 얻게 하셨던 것을 기억했다. 이삭은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삭은 계속해서 옮겨 다닐 수 있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았다. 혹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면, 하나님은 그것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셨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그러면 낙심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기대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삭은 어떻게 되었나? 그는 영적으로 계속해서 부흥해 간다. 그리고 ‘르호봇’의 축복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게 하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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