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막 10:46-52)
- 신애교회
- 4월 11일
- 4분 분량

오늘 말씀은 여리고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세가지 배경이 있는데 첫번째는 여리고라는 지역입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처음 시작했던 곳입니다. 여리고성 전투는 하나님의 전쟁이었고 하나님이 희년을 선포한 거고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는 데 첫 전투로 삼으신 겁니다. 이 성벽을 무너뜨려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지게 했는데 사람의 손으로 만약에 누구라도 그 성을 재건한다고 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여리고는 하나님께서 첫 전투로 삼으셨는데 그 땅을 받으신 후에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곳입니다. 무너지고 버려진 채로 그냥 그대로 존재해야 되는 그런 곳이 여리고라고 하는 도시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입니다. 그곳에 바디메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이름의 뜻이 혼돈 불결 즉, 혼돈의 아들, 불결한 자의 아들 이런 뜻이 있습니다. 여리고가 버려진 도시, 저주받은 도시를 상징하는 것처럼 바디메오라고 하는 이름 자체에 버려진 사람, 차별받는 사람이라고 하는 상징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배경은 이 사람의 상태, 이 사람은 맹인이며 거지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저주의 자리에 있었으며 길가에 버려졌고 존중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이 사람이 구원받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바디메오처럼 누구라도 주님에 의해서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디메오는 자기 안에 의로움이 없고 자기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막 10:47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바디메오가 더 큰 소리로 간구합니다.(막 10: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메오가 자기 상태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바디메오는 은혜를 받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야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자기를 주장도 자기 자랑도 없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부자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영생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 사람은 계명을 잘 지켰다고 말하며 자기 공로와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제자들은 서로 자신들의 자격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와 자랑을 주장하는 사람은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디메오는 완전히 다른 모습 즉, 자기를 내세울 것이 없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신자는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구하는 자,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 10:50절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 오거늘’ 바디메오는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서 예수님께로 갔다는 것입니다. 겉옷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겉옷은 생명과 같습니다. 해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고 추위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줍니다. 바디메오는 자기 생명과 같은 겉옷, 자신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한 가지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부자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0:21절) ‘내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내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부자는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아서 슬픈 기색을 띠고 예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주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겉옷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구한다고 해도 자기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막 10:29-30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100배나 받되 박해를 겸해서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한 자가 없느니라 버린다라고 하는 말이 헬라어로 아피엠이고 이것은 나로부터 떠나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용서한다, 포기한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내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는 것이 용서가 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생애에서는 하나님을 가장 의지하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막 10:49절)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자기를 버린다는 게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 중대한 선언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마음에 낙심이 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위로가 되고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에라도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아프고 아까운 것인지 여러분 그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벽마다 부지런히 하나님 찾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혹시 인생이 고달프고 넘어지고 쓰러진 상태이고 힘이 없고 아픈 분들은 지금 주님이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지고 여러분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응답 주십니다. (요 14: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바디메오가 자기를 다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언약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 만나서 대화하면서 믿음이 생긴 게 아니라 믿음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언약에 대한 믿음으로 바디메오가 은혜를 구합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 헬라어로는 엘레에손이고 히브리어로는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자비 인자, 긍휼, 사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공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약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한 용서이고 절대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심판입니다. 바디메오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언약의 후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언약의 후손, 다윗의 후손이라 말합니다. 언약의 후손으로 보고, 언약 안에서 구원받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디메오는 지금 언약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언약을 붙잡고 언약 안에서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다 부인하고 주님께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언약 안에서 언약을 붙잡고 언약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나를 일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을 붙잡고 십자가 언약 안에서 은혜를 구하면서 사는 존재들인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계속 구해야 합니다. 언약을 포기하지 마시고 말씀을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최종 결론입니다. 앞에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자기를 버리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맹인 거지인데도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냐 봤더니 이런 사람에게 은혜 주시더라는 거예요. 내 인생이 무너졌는지 일어섰는지 상관이 없습니다. 가난하든지 부하든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아픈지 건강한 지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언약을 붙잡고 언약 안에서 은혜를 구하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와서 여러분에게 새힘과 권능으로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디메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메오에게 뭐하기 원하는지 질문하니 바디메오가 보기 원한다고 대답합니다. ‘블래포’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중심을 향한다, 위를 향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고 중심을 꿰뚫어 보기 원하고 하늘의 뜻을 깨닫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속사람을 관통해서 보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꿰뚫려서 보기를 원합니다.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런 고백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디메오는 의지할 것도 없고 가장 밑바닥에 있었기에 주님을 의지하여 은혜 받을 것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의로운 것도 옳은 판단력도 없고 눈을 뜰수도 없기에 하나님앞에 설수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당신이 아니면 말씀을 꿰뚫어 볼 수도 없기에 나는 그저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기를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붙잡지 않고 언약을 붙잡고 있는자 입니다. 십자가의 언약을 붙잡고 계속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용기를 내고 일어나라. 용기를 가지고 힘을 가지고 일어나는 자가 되어 주님을 의지하고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말고 기도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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