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로몬 사후에 남북 왕조로 분열이 됩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는데 통치를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로보암왕을 통해서 10개의 지파를 잘라서 북이스라엘로 이제 떼어내시는데, 북이스라엘에서 오므리라는 사람이 이제 왕(북이스라엘 6대)이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오므리의 아버지는 시므리가 왕조를 이루고, 오므리가 왕이 됐을 때 북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가 나라로서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은 아합입니다. 아합은 이제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나라를 이제 부국강병의 시대로 이끌어 나가는 그런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이 때를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오므리 왕조 시대라고 말합니다. 오므리는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아합은 영적으로는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 이라는 여자가 아합의 아내인데 우상숭배 즉 죄악의 씨앗을 이스라엘에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을 우상숭배하는 나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여로보암 시대에는 우상숭배의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신앙하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하는 제사장들을 다 추출해서 숙청시키고 그리고 곳곳에다가 바울과 아세라 제단을 쌓고 사람들이 그 재단에 가서 우상 숭배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두운 시대인 것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왕상 17:1에서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이라고 나타납니다. 길르앗은 가나안 밖 요단 동편입니다. 이 지역은 르우벤 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쪽지파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땅을 보니까 먹고 살기 좋아 보여서 모세에게 얘기해서 정착하려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대신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거주해 사는 거는 좋은데 가나안 정복 전쟁에는 용사들이 참여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울때는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지파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요단강 동편의 땅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길르앗이 바로 그 곳입니다. 갓지파가 머물던 곳입니다.
갓지파 사람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 사사기에 나오는 입다입니다. 입다는 출생부터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본처의 형제들이 왕따를 시키고 핍박을 받다가 돕이라고 하는 땅으로 도망갔습니다.(삿11: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그곳에서 잡류들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잡류는 불량배를 뜻합니다. 불량배와 어울려 살던 사람이 입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런 콤플렉스 덩어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말씀을 세우라 그런 뜻으로 사사로 세웁니다. 갓지팔 출신의 입다가 출생배경이 성경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출신 배경에 나오지 않고 그저 거기에서 살던 디셉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셉 사람이라고 하는 건 요즘 말로 얘기하면 시골 어느 마을 출신이다. 이런 뜻입니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서에 가게 되면 이 엘리야에 대해서 몇 가지 설명하는데 첫째는 엘리야가 의인이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을 보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고 하면서 엘리야를 소개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만 신앙하는 의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5장 17절 이하를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보통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타난 특징을 보니까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지 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기도하는 면에서는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기도했던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은 보통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에 열매를 맺었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쓰시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니까 하나님이 안 되겠는 거예요.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에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나라가 군사력도 강하고 경제 문화적으로 꽃이 피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 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무너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시는데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니까 하나님 말씀처럼 진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습니다. 온 천지에 비가 내리지 않고 사람들이 기근으로 이제 굶어 죽을 위기에 다 빠진 겁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이라면 깨달아야 하는데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3년 6개월 뒤에 이제 비가 올 거야 하면서 이렇게 또 기도합니다.
바울과 아세라를 섬기던 선지자와 제사장들, 우상 숭배자들 850명을 갈멜산으로 불러냅니다. 거기에서 갈멜산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 대결을 벌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단을 쌓고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하자는 것이 이 대결의 핵심 이슈입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 제단을 쌓고, 자기가 섬기는 신들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이제 기도를 합니다. 온갖 방법을 써서 기도합니다. 자기 몸을 자해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실패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섬기던 신이 그저 우상에 불과했구나라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엘리야가 나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도랑을 파고 물을 가득 붓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이 재단을 불사르는데 어느 정도로 불을 사르냐 하면, 도랑에 채운 물이 완전히 말라버릴 정도로 불이 타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이제 엘리야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기 우상숭배하는 사람들 다 잡아 죽여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근거는 어디 있냐면, 사람들이 엘리야가 기도할 때 하늘에서 떨어진 불을 보고 선언을 하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호와 그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이런 고백을 백성들이 토해내고 그것도 가만히 서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떨어진 모습을 보고 엎드려서 하나님께 그런 고백을 토해내더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그런 뜻입니다.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믿음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이 엘리야의 이름인데 엘리야의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고백하고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에 물들어 있는 여자에게 붙잡혀 있으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오히려 화를 냅니다. 화가 나가지고 엘리야를 향해서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왕상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 사람 중 한 사람 같게 하리라. 라고 하는 것은 850명이 죽은 것처럼 너도 죽게 될 거야. 내가 너를 반드시 죽이겠어. 라면서 이세벨이 마음이 변화되고 회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막 화를 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엘리야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바울과 아세라 제사장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한 거잖아요. 하나님이 인류 역사에서 오로지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사실이 증명된 거 아닙니까? 엘리야는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기적을 보고 능력을 체험했는데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까 어떠냐? 다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보고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것입니다. 영적침체때 회의감, 허탈감, 무기력감,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확 들어온 것입니다. 사람이 그럴 수 있습니다. 힘을 다해서 일을 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열매가 없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공허감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내 기대보다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는데, 집으로 돌아가고 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집으로 돌아가서 직장으로 돌아가서 여러분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낙심하고 좌절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위로해 주셨는데 내 인생이 또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동안에 그런 일들을 계속 경험해 오신 분이 계신지요?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다시 누웠습니다.
왕상19:6-7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엘리야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잘 보십시오.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엘리야가 호렙으로 갑니다. 여러분 계속 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힘들어도 가야 해요.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서 가는 거예요. 엘리아가 있는 곳에서 호렙까지의 거리가 한 350km 정도 됩니다. 성경에서 보통 35km에서 한 40km를 하룻길이라고 표현합니다. 350km면 10일 길입니다. 그런데 40일이 걸렸습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걸어서 갔을까요? 8절에 나오는 말씀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8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여기서 말하는 그 음식물이란 하나님이 두 번째로 공급해 준 음식물입니다. 천사가 엘리야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서 공급한 그런 음식물입니다. 로뎀나무에서 죽기를 구했는데 하나님이 첫 번째로 음식을 주셨습니다. 그거 먹고 하나님이 다시 천사를 보내서 위로해 주시고 음식을 주셨습니다. 그 음식을 먹고 일어나서 그 음식물의 힘에 의지해서 호렙으로 갔다는 것은 가는 여정 속에서 그 음식물 말고 다른 음식물을 먹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음식물을 먹지 않고 오로지 두 번째로 받아먹었던 그 음식물에 의지해서 호렙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40일 동안 호렙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면서 엘리야가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말씀을 받아 먹었고, 엘리야는 그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 생명을 걸었습니다.
영적인 침체에서 어떻게 살아나는가를 잘 보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주는 말씀을 받아놓고 하나님이 주는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는 그 말씀에 여러분의 생명을 맡기는 승부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붙잡고 가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길을 온전한 길로 인도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복된 삶으로 이끌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말씀의 권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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