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도 자신감도 기도로 다스려야 승리한다.(창 37:1-11)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음성을 듣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음성이든, 꿈이든, 비전이든 모두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 언약을 따라가다 보면 시련과 환난을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마귀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훼방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바꾼 10초]라는 책을 보면, “악인들은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강하고 교활하다”란 표현이 나온다. 악인들은 지치지 않는다. 포기하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마귀가 배후에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과 비전을 향해 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끝까지 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계 2:26절에 보면,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믿음이다. 요일 5:4절을 기억하시라.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여기서 “승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케’는 ‘정복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 붙잡힌 믿음이 세상을 정복한다는 것이다.

요셉은 그런 믿음으로 자기에게 들어온 환난을 압도해 나갔다. 세상에 굴복당하지 않고, 세상을 이겨냈다. 여러분도 모두 그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요셉과 같은 믿음의 승리자들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의 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하나님이 보여주신 언약에 사로잡혀야 한다.

본문 말씀에 요셉이 꿈을 꾼 이야기가 나온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당했다. 그런데 꿈을 꾸고 형제들에게 이야기한 뒤에, 그것이 더 큰 계기가 되어서 형제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그 꿈이 계기가 되어서 형제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 그런 형제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야곱의 이야기이다. 10절,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요셉의 꿈에서 “해와 달과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꿈을 어떻게 해석했기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되었나? 10절을 보면, “해는 아버지, 달은 어머니, 11별은 나머지 형제들”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꿈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 꿈이 전하려는 본질적인 메시지와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형제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절을 한다. 그런데 그 때 요셉의 동생이었던 베냐민은 함께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11명이 절하는 일은 없었다. 야곱이 애굽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야곱이 요셉에게 절을 했던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애굽에서 야곱과 11명의 형제가 요셉의 통치 아래에 있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요셉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레아와 라헬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절하는 일까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요셉이 꾼 꿈에서 개인적인 비전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요셉의 꿈에 훨씬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요셉의 꿈을 통해서 보여주시려고 했던 큰 그림이란 무엇이겠나? 그의 꿈은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다는 꿈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언약이 성취되는 꿈을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장차 이루어질 일을 보여주시는데, 그 안에 담겨진 메타포가 있다. 그것은 유다와 메시야에 대한 언약이다. 유다에서 메시야가 나오는데, 온 세상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요셉이 꾸었던 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경륜을 보여주신 꿈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다. 그 이스라엘에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신다. 그리고 메시야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 약속을 보여주신 꿈이 요셉의 꿈이었다는 말씀이다.

오늘 여러분이 듣고 있는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뒤집어 놓을 만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을 보면 다른 것이 없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학벌, 외모나 재산과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그렇게 쓰임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언약이 무엇인지”를 본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의 법칙이 세상을 끌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것을 보았던 사람이 요셉이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세도, 사도들도 모두 그 언약을 보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다.

2. 하나님이 보여주신 언약에 이끌려야 한다.

언약을 본 사람들의 생애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들이 자기가 본 약속에 이끌려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가 보았던 꿈이나 이미지에 끌려가는 인생을 살았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성경을 보면 아예 아무런 계획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요셉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는 노예로 끌려가겠다든지, 감옥에 가겠다든지, 애굽의 총리가 되겠다든지 하는 계획이 없다. 그냥 자기가 보았던 꿈만 기억하고 살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이 계획했던 목적과 의도대로 살아진 것이 아니다. 자기들의 계획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야곱은 경황 중에 ‘밧단아람’으로 이끌려갔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으로 끌려간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이끌려가고, 요한은 밧모섬으로 끌려간다. 그렇게 무언가에 이끌려 다닌 곳에서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지에 이끌려서 살았다. 그러니까 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들의 인생이란 결국 자기의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하나님 의지대로 써나가는 인생이다. 잠 16:9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에 붙잡힌 인생은 자기 계획으로만 살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는데 일하는 것이 안 풀릴 때가 있다.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하려고 하는데, 길이 막힐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런 것도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더 좋은 길로 들어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섭리에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면서, 신앙의 길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면, 결국 하나님이 성취하시는 언약의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3. 모든 것을 기도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언약이 내 삶을 주관하고, 나를 이끌어가도록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 방법을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다. 마 11: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이 온유하고 겸손하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언약과 뜻이 예수님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온유와 겸손이 무엇이라고 했나? 야생마가 주인에게 길들여진 상태가 온유라고 말씀드렸다. 왜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길들여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자기 뜻이 자아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있다.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오랜 세월 신앙하면서도 하나님께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과 더 많이 접촉하고, 세상에 더 많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성공이론과 같은 것들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것이다. 주님께 길들여져야 주님의 뜻이 내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란 세상에 길들여진 인간이 다시 주님께로 길들여져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나이 40세가 될 때까지 세상에 길들여졌던 사람이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해서 민족을 구원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언약의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연단하신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종으로 길들이신다. 다윗도 그냥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연단을 받았다.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하나님께서 불같이 연단하신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연단하시는 과정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기도가 답이다. 기도 외에는 답이 없다. 모든 것을 기도로 다스려 나갈 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요셉을 연단하신 것은, 그를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 가시려는 의도였다.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와 같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두려움이 올 수 있다. 그런데 두려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두려움이 찬송과 기도로 바뀌어야 한다. 기도하는 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내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 기도하는 영으로 바뀐 사람은 승리했다고 성공했다고 교만해지지 않는다.

성도란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께 붙들려야 승리하는 것이지 자기의 경험이나 장점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기도로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한다. 연약함도, 불안감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기도로 다스려야 한다. 슬픈 일이 있고, 실패를 경험하고, 고통이 있을 때에도 기도로 다스려야 한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일도 기도로 이루어가고 기도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진짜 승리자가 된다. 하나님의 언약에 붙들려서, 그 언약의 성취를 맛보는 진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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