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인생의 완성을 맛보다.(창 35:23-29)



마틴 로이드존스는 “기독교는 능력이다”는 말을 했다. 기독교는 유익을 주는 종교이다. 영혼육을 일으켜 세우며, 자유하게 하고, 상처를 치유한다. 무엇보다 복음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철학이나 조언, 그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실패를 이겨내게 하고, 괴로움을 극복하게 하고, 상처를 회복하게 한다. 기독교는 능력이다.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 인생을 허망하게 살던 사람, 술 중독에 빠져 있던 사람이 변화되어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곳이 교회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인생을 바꾸어주나? 은혜이다. 인간은 연약해서 쓰러지고 실패하고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일어서게 하신다.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해서, 인류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 붙잡히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런 인간을 구원하셨다. 오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몇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의 제목을 삼으려고 한다.


1. 하나님은 성도의 기다림을 보상해 주신다.


오늘 말씀은 이삭의 생애가 성경에서 끝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29절,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어 ‘사베아’와 다시 한 번 만나게 된다. 이삭이 나이가 많다고 했을 때, “많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우세바’이다. 우리는 ‘사베아’라는 단어를 아브라함의 죽음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아브라함의 삶이 누가 보기에도 완전하고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의 삶에는 실수와 질곡이 많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셨나? 그것이 ‘사베아, 만족할 만하게 살았다’는 평가였다.


창 25:8절에서,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라고 했다. 여기서 “나이가 높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사베아’인데, 이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이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는 ‘꽉 차게 살았다, 만족하게 살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생애가 만족한 삶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들의 인생이 완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인생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족하고 완전한 삶이었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도 했고, 때로 실수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실수했던 때가 있다. 또 한편, 이삭의 관점에서 보면 순간순간이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랜 기다림의 세월 끝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본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기다리고 인내하는 세월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했는데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는 60세가 되었을 때 자식을 보았다. 결혼해서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을 때까지 20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삭은 에서가 언약의 사람이 아니라 야곱이 언약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떠난 이후에, 그가 언약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기다린 세월이 또 20년이다. 그런데 그 기다림의 세월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야곱이 세겜 땅에서 사는 10년 세월을 또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야곱이 언약의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 이삭과 다시 만나기까지 30년 세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창 25:27절에서 이삭과 야곱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의 인생은 기다리는 인생이었는데, 노년에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언약의 성취를 맛보았다. 자기 인생의 만족스러운 때를 경험했다. 그것이 ‘사베아’이다.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것이다. 그의 생애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만족할 만한 생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소망이다.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내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에게 은혜를 더해 주신다.


이삭의 생애는 오랜 기다림의 인생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과정에서 이삭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이삭은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 그렇다. 기도이다. 이삭의 생애는 기다리는 삶이었지만, 막연하게 기다리는 삶이 아니었다. 이삭의 인생은 기다리는 인생이면서, 동시에 기도하는 인생이었다. 이삭의 삶이 기도하는 인생이었다는 것은 창 24장에서부터 이미 드러나고 있다. 이삭은 그의 어머니 사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들에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떠나간 어머니를 애도했다. 창 24:63절,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묵상하다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아’가 ‘기도하다, 묵상하다, 애곡하다’란 뜻이다. 이삭은 기도하는 사람, 묵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날마다 들에 나가서 하나님을 묵상했다. 말씀과 언약을 묵상했다. 그렇게 기도가 습관화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했을 때에도 어떻게 했나? 창 25:21절에서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라고 했다. 그는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가정과 인생을 놓고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기름을 부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때를 따라 돕는다는 말은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성도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시간에 꼭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토저가 소중히 여긴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시 18:28절 말씀이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그는 이 말씀 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작은 등불이 꺼졌다고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등불을 다시 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면 우리의 어둠이 사라질 것이다. 내 말을 믿어라.” 성도는 하나님이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교만해지지 않고,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토저의 말처럼,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일이 잘 풀릴 때만큼 즐겁게 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3. 성도는 하나님의 길에서 쓰임 받아야 한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이다. 그들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 에서가 조금 먼저 나왔지만, 에서가 나올 때 야곱은 그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따라 나왔다. 무슨 말인가? 두 사람의 인생 출발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똑같은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사모하고, 에서는 언약을 가볍게 여겼다. 야곱이 은혜의 길을 가고, 에서는 비은혜의 길을 갔다. 그렇다면, 이삭의 신앙교육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일까?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삭의 생애는 ‘사베아’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인생이 남기고 있는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인생은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그 교훈이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이다. 이삭은 두 아들을 남겼다. 앞으로 이스라엘은 누구의 길을 가야 하는가? 에서의 길인가, 야곱의 길인가? 여기서도 당연히 야곱의 길을 가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했던 사람의 길, 아버지 이삭이 갔던 언약의 길을 따라갔던 사람의 길, 하나님과 만나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 야곱이 가나안에 돌아와서 곧바로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을까? 그것도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 이유는 이삭이 완성된 야곱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삭은 자기를 부인하고, 우상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온 야곱을 만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얍복강 이후의 야곱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부흥을 체험했던 야곱을 만나야 했다. 하나님의 언약이 확증된 야곱, 그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확정받은 야곱을 만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창 34장의 고난과 창 35장에서의 부흥을 경험한 야곱이 이삭과 만난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의 길에 서게 된 야곱의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교훈하고 가르치려고 하셨다. 에서의 길을 가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도 있다. 이름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더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에는 실패하는 것이다. 재물과 명예를 가지게 했는지는 몰라도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는 실패하는 것이다.


성도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에 서야 한다. 하나님을 신앙하고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길에서 쓰임받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축복의 길이고, 성공의 길이고, 진짜 좋은 열매를 맺는 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여러분이 야곱의 길에 서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의 기쁨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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