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가지고 전파한 사람들
35절에서,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게네사렛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이 근방에 두루 “통지했다”고 했습니다. 헬라어로 ‘아포스테일란’인데, 원형이 ‘아포스텔로’입니다. 상당히 익숙한 단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의 사명을 주고 파송한 제자들을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를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인데, 천국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들이 ‘아포스톨로스, 즉 사도‘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두루 통지한 사람들”은 목적과 의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졌던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들은 물론 모든 병든 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병을 고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번역된 성경이 주는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용된 헬라어가 ‘에피그논테스’입니다.
‘그노시스’는 ‘지식’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지금 알아가고 있는 중일 때 사용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알지는 못합니다.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럴 때 ‘그노시스’입니다. 그런데 ‘에피그노시스’라고 하면, ‘완전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에피그노시스’는 사람의 노력과 열심으로 알게 되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되는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피그노시스’는 우리를 경건에 이르게 합니다. 경건에 이르게 하는 지식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이신 것을 ‘에피그노시스’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완전히 깨달아 알았습니다. 무엇을 완전히 알았다는 것입니까? 제자들의 고백에 답이 있습니다. 풍랑이 그친 뒤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33절입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이 병을 고치게 하려고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병든 자”를 표현할 때, ‘카코스 에콘타스’라고 했습니다. ‘나쁜 것을 가진 사람, 악한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악한 영혼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께 와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나음을 얻었다”(36절)고 했습니다. ‘디아소데산’은 ‘완전한 구원을 받았다, 완전히 온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구원이 목적인 예수님
그들의 목적과 의도는 단순한 병고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두루 통지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알리지 않았다면, 게네사렛에서 구원의 역사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알려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사람들에게 알렸을까요? 자기들이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자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전도입니다. 영혼구원입니다. 벧전 2:9절을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목적과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우리가 그 구원의 목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왜? 라는 질문에 하나로만 대답하면 인생이 풀린다”입니다. 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구원입니다. 왜 우리와 만나주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십니까? 구원이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직분을 받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라.
여러분, 학교에 다닐 때 한 번도 꾸중을 들어보신 적이 없습니까? 매를 맞아 본 경험도 없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꾸중도 듣고 회초리도 맞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싸여서 제가 바르게 성장한 것입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모욕적인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큰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막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살면서, 가장 크게 들은 욕은 무엇입니까? 모욕적인 말이나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구원받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보다 큰 욕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직장 생활에서 당했던 모욕보다 주님을 전하면서 당한 모욕이 더 작다면 구원받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들었던 욕보다 주님을 전하면서 들은 욕이 더 작다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부하면서도 욕 먹고, 일하면서도 욕 먹고, 사회 생활하면서 욕 먹고, 무슨 일을 하면서 욕 먹은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전하면서 먹은 욕이 없습니까? 조롱당한 적이 없습니까? 그러면 우리 주님께 너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눅 5장을 보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막 1:38절에서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딤 1:15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예수님의 목적이고, 예수님이 떠나신 뒤에 제자들의 목적이 되었고,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목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전도는 “지상대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가라”는 말이 1,514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에만 233번, 마태복음에만 54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영혼구원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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