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쥐면 먼지가 되고, 버리면 생명이 된다.(마 19:23-30)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24절을 보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는 주로 밤에 이용하는 “바늘귀 문”이 있었습니다. 이 문은 좁고 낮아서 낙타가 짐을 짊어진 채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짐을 다 내리고, 무릎을 꿇어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자가 자기의 소유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부자의 문제는 “많은 소유”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의 문제는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보다 자기의 소유를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신뢰를 버려야 합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넌 할 수 있어!”를 가르칩니다. 자신감을 가지면 얼마든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입니다.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신뢰하는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넌 할 수 없어!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게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고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 있을 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항상 그런 식입니다. 우리로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서는 다 됩니다.
움켜쥐지 말고 버리라.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움켜쥐지 말고,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관원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진짜 지켜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을 ‘테레손’해 보아라. 율법의 정신까지 지키고 보존하는 식으로 나가 보아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좌절하게 됩니다. 자기에게 절망하게 됩니다. 율법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자기를 발견하고, 율법 앞에서 죄인인 자기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을 지켜내라”가 아니라, 율법 앞에서 “좌절을 경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의로움”을 버리고, 주님께 매달리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직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움을 얻어 보겠다”는 식으로는, 그런 자기의 의로움을 앞세우는 방식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스펙이나 소유나 지식이나 능력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사고의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야.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데? 내가 이룬 성과가 얼마인데? 내가 얼마나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았는데? 내가 살아온 방식이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처럼만 살라고 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관원은 그런 방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되지 못하고, 자기를 붙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의가 포기되지 않으면, 즉 자기가 하나님보다 신뢰하던 것들과 분리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소유를 움켜쥐고,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먼지로 끝나게 됩니다. 허무와 공허라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음 받았으니 그냥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이후에는 영벌의 고통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버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영생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29절을 보면,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했습니다. 버리면 여러 배를 받는다고 했는데, 원어적으로는 “백 배”(헤카톤타플라시오나)란 뜻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라.

오늘 말씀 제목이 “움켜쥐면 먼지가 되고, 버리면 생명이 된다”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움켜쥐고, 그것을 하나님보다 의지하면 결국에는 먼지가 됩니다. 토저는 “내가 하나님의 손아래에 계속 머무는 한, 내 원수는 나를 괴롭힐 수 없다. 내가 내 검을 놓으면 승리는 내 것이 된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내 손에 쥐고 있으면 나는 패배한다. 내 힘으로 싸우면 반드시 패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토저는 “하나님은 자기 힘으로 싸우겠다고 주먹을 꽉 쥐는 사람의 편에 서서 싸우지시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신뢰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의로움으로 승부를 내려고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여러분의 죄를 속죄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셨다고 하니까 자기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여러분도 죽은 것입니다. 롬 6:4절을 보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죽은 자가 되어서 자기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골 2:12절에서는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여러분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죄로 인한 사망의 고통이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 자아로 자기를 주장할 수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살아났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인 것입니다. 사망을 통과하고, 영생으로 가는 생명을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니까 성도가 어떻게 자기를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그냥 주님께 무조건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끄시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를 아는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의 동역자였던 필립 멜랑히톤이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고, 자기의 계획을 주장하면 안 되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죄된 옛 사람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산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