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나를 의의 무기로 드릴 수 있을까요?
디모데후서 에서는 모든 그릇이 어떻게 쓰임받는가? 라고 할때에 모든 그릇이 쓰임받지만 어떤 그릇은 귀하게 쓰임받고 어떤 그릇은 천하게 쓰임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디모데후서 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귀하게 쓰임받는 것과 천하게 쓰는 그릇이 나타납니다. 로마서에서는 의의 무기와 불의의 무기로도 대조됩니다(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선과 악, 새사람과 옛사람, 거룩한 삶과 거룩하지 않은 죄의 본성대로 사는 삶이 대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연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민수기 26장에서는 광야의 인구조사를 합니다. 십계명도 받았던 세대가 다 죽게 됩니다. 많은 시험이 있었지만 특별히 세가지 의 큰 시험이 나타납니다.
첫째,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광야입니다. 여기서 12명을 선발하여 가나안을 정탐하게 됩니다. 10대 2의 보고를 듣습니다. 애굽과 광야가 좋다는 것과 가나안 정복 가능성의 비율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애굽과 광야의 세대는 홍해를 건넜고 만나를 먹었고, 기적을 경험했고, 십계명을 체험한 세대였습니다. 또 이들은 성막을 세운 세대입니다. 그러나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왜 입니까? 말씀을 붙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은 세대는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룩은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둘째, 놋뱀을 바라보는 사건입니다(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불평과 불만의 세대가 불뱀에 물려 죽었지만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감사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셋째, 싯딤에서 머무는 동안 모압 여자들의 유혹에 빠져 우상숭배와 음행을 한 사건입니다(민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로인해 염병(민25: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경건과 불경견으로 나뉘어집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기도하고 가정의 일을 돌볼 때에도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경건인 것입니다.
죄가 문제입니다. 죄가 주장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롬 6:14-15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렇게 이제는 거룩함에 이르는 살아가시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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