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삿 7:5-23)
- 신애교회
- 4월 3일
- 4분 분량

오늘 말씀은 사사 기드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안이 연합군을 구성해 가지고 가나안 중부 지역으로 이제 침범에 들어 왔습니다. 이스르엘이라고 하는 골짜기에 진을 쳤는데 이곳은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난 곳으로 무깃도입니다.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은 철기로 진입이 안 된 청동기 시대를 살 때입니다. 그런데 적장 시스라의 군대는 철병기만 900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시스라엘 철병기 구백대를 진멸하게 도우셨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무깃도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마지막 심판 때에도 하나님께서 사탄 마귀의 권세를 압도적으로 이기게 하시고 우리 믿는 자들로 하여금 승리의 반열에 도달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 무깃도에 13만 5천의 적의 군대가 들어왔고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가 3만 2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자를 돌아가게 하셔서 2만 3천명이 돌아갔습니다. 13만 5천과 3만 2천이 붙어서 싸운다라고 하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싸움인데 이제 만명밖에 안 남았고, 미디안은 철기로 이미 진입돼 있는 상태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청동기 문화 속에 사는 백성들이니 기드온은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삿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옷을 입혔다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충만한 기드온은 믿음의 담력이 생겨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말씀을 읽으면서 약간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건 뭐냐 하면 기드온은 분명히 성령으로 충만한데 믿음의 담력으로 하나님 명령에 곧장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충만한 기드온도 하나님께 두 번의 표적을 요구합니다. 러면서 만 명을 또 300명으로 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확실한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그 확실한 표적을 통해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는 확신을 가지고 싸움에 임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되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기드온이 붙잡고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 놓도록 요구하십니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안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느낄 때 우리 신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막혔던 문제를 풀어내시고 답답했던 감정들을 시원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해도 두려움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다만 성령께서 이기게 할 것을 믿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성령님과 함께 넘어갈 뿐입니다. 기드온에게도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삿 7: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도원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내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하나님께서 기도원에게 말씀하시기를 “미대한 진영으로 가라 내가 그 진영을 네 손에 내가 붙였어” 하나님이 붙이신거고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두려움과 근심이 없다면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원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신 것입니다. 첫 번째 선택지는 무조건 가서 싸워라. 승리할 거야입니다. 두 번째 선택지는 너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내려가서 정탐해라. 기드온은 두려움에 두 번째를 선택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기드온에게 다시 믿음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미디안 진영에 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시는데 어떤 한 사람이 꿈을 꿨고 그 친구가 꿈을 해석해 주는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에 와가지고 이리 굴러다니고 저리 굴러다니면서 장막을 무너뜨렸다라는 꿈을 꿨다는것입니다. 우리 진영 위대한 진영에 들어온 보리떡 한 덩어리가 바로 기도온의 칼이고 그 기도원의 칼이 우리 진영에 들어와서 우리를 다 격파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싸울 도구는 나팔과 횃불입니다. 숫자적으로도 13만 5천 대 300명이고 무기도 철기와 청동기의 대결입니다. 그러니 무기로는 싸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믿고 나갔다는 뜻입니다.
300명의 용사들은 기드온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드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한마음 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든 가정이든 마음이 하나가 되고 뜻이 하나가 되면 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서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정도 교회도 모든 곳이 다 똑같습니다. 회사도 그렇고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면 30명이 50명이 되고 100명이 되고 500명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10만명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 100명이 하나가 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면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데 한마음 한뜻이 되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300명의 군사가 하나 된 모습 한 뜻으로 기드온이 하는 대로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를 부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13만 5천 명을 물리치시는 역사를 기드온을 통해서 이루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핵심이 되는 말씀은 하나님께 붙잡히면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삿 7:15)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혹시 지금 넘어진 자, 신앙의 담력을 잃어버린 자가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편에 있느냐 아니냐가 핵심입니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라고 말하는 이 사람들의 행동을 우리가 한번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소리를 질렀는데 이들의 4가지 행동패턴에서 사람들이 함께 지키는 행위가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각기 제 자리에 서서 라는 것입니다. 13만 5천 명과 싸우는데 300명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다라고 하는 게 쉬운 게 아닙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 고지를 지키는데 자기 자리를 사수한다는 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영화를 통해서 봅니다. 확신이 있어야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담대함이 있어야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천 명이 나한테로 도망온다 하더라도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자리를 지킨 이 사람들은 기도원의 300명 용사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각기 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는 어머니 자리에,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 부모는 부모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바로 설 수 있느냐 각기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 자리에 장로는 장로 자리에 권사와 집사는 그 자리에 성도는 성도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리, 기도 의 자리, 전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 헌신의 자리, 희생의 자리, 섬김의 자리에 각기 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 한마음 한 뜻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300명 용사가 자기 자리에 각자 서 있었는데 자기 마음대로 생각대로 뜻대로 움직인 게 아닙니다. 한마음 한 뜻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한마음 한 뜻을 가지고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여러분 가족들 안에 들어갈 때에 그 말씀의 뿌리가 여러분을 서로 연결해서 하나 된 바른 가정이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00명이 불었던 것은 결국 말씀의 선포입니다. 성도가 담대하게 자리를 지키고 믿음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말씀을 선포해야 할 때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한 횃불이 드러나게 하려고 항아리를 부은 것처럼 성령이 나를 사로잡게 하려면 성령이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하려는 내 자아의 항아리를 부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아를 부수고 생각을 부수고 자기 경험을 부숴야 한다는 거예요. 말씀과 성령에 붙잡혀서 하나님 편에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혀서 하나님 편에 있으면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믿고 승리하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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