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신앙으로 삶이 기적이 되게 하라(약 5:13-18)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신 뒤에,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셨다.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고쳐주셨다. 제자들이 물었다. “예수님,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 9:29)였다. “프로슈케”의 기도, 그것으로만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기도로만 되는 일이 있다.

오늘 말씀은 기도로 승리했던 선지자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 그의 삶이 기적이 되고, 기도가 기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1.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구했기 때문이다.

약 5:17-1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여기서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했다. 성정이라는 말이 ‘호모이오파데스’라는 헬라어인데, ‘동일한’이라는 뜻의 ‘호모이오스’와 ‘고통’이라는 뜻의 ‘파도스’가 합쳐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도 우리처럼 똑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던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비를 오게도 하고, 멈추게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능력을 행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아니까 하나님께 인내하면서 기도할 수 있었다.

엡 1:19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너희가 받게 되기를 구한다”고 되어 있는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도들이 “아멘”하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한 것은 그럼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능력이란 얻는 것보다 아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엘리야와 관련된 사람 중에서 능력하면 또 생각나는 사람이 엘리사이다. 그는 스승이었던 엘리야를 따라 다닌다. 그러다가 엘리야가 “내가 이제 하늘로 올려질 것인데, 그 전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엘리사가 유명한 말을 했다. 왕하 2:9절,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엘리야가 놀라운 말씀을 선포한다. 왕하 2:10절,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 대목을 놓치면 안 된다.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달라고 한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히크쉬타’란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는데, ‘곤란하게 하다’는 뜻이다. 왜 곤란하다는 것인가? 엘리야의 능력이란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중요하다. “능력을 받느냐 못 받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느냐 못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엘리사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무슨 뜻이겠나? 능력은 하나님께 받기 이전에,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엘리야가 인내하면서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랐다면 그렇게 인내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한다.

여러분, 기도하다가 포기하는 때가 있었나?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죄송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까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보는 것이 핵심이고, 아는 것이 핵심이다. 고상하게 말하면,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고 알면, 말씀이 보이고 소망이 보인다. 비전이 보이고 꿈이 보인다. 보여지고 알아져야 한다. 보여지고 알아지면 믿어지고, 믿어지면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하면 삶이 기적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구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함께 가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라. 어떤 사람이 고난 당할 때 기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사람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왕상 18장을 보면, 엘리야가 기도하기에 앞서 아합에게 하는 말이 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선포했다. 이 때가 실제로 비가 올만한 징조가 있던 때가 아니었다. 여전히 하늘은 아무 것도 없는 메마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선포했다.

엘리야의 행동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눈앞에 펼쳐지는 사실이 진리인가, 하나님의 약속이 진리인가?”에 대한 교훈이다. 아직까지 눈앞에 펼쳐져서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메마른 하늘이고, 맑고 푸른 하늘일 뿐이다. 그런데도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무엇을 선포했던 것인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현실과 다르게 보이던 약속을 선포할 수 있게 했을까? 믿음이다.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니까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약속을 이루신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로손’이라는 조카와 농구를 했던 이야기가 있다. 조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농구를 하자고 보채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골대 높이를 3m에서 2.5m로 조정해 주었다. 그 다음에는 조카를 번쩍 들어서 골대와 가까이 있게 해 주었다. 조카가 골대 바로 앞에서 공을 던졌고, 공은 테두리를 빙빙 돌다가 들어갔다.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여전히 목사님에게 안겨 있는 채로 두 주먹을 꼭 쥐고 휘둘러가며 외쳤다는 것이다. “넣었다! 내 힘으로 넣었다.”

우리도 이와 같다. 여러분도 자기의 힘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문제를 지극히 사소하게 만들어서 해결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도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란다.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성도의 삶이 기적이 되는 것이다.

3. 응답을 믿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 5:17절에 보면,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엘리야는 왜 간절히 기도했을까? 자기의 힘으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을 때, 무려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말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엘리야가 다시 기도했다.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면서 다시 기도했다.

그렇게 다시 기도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했나? 18절에서,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했다.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던 땅이었다. 그러니까 땅바닥은 말라 비틀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기도했을 때” 메마른 땅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갖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기도했다. 그는 “비”라는 주제를 가지고 3년 6개월 만에 다시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묵은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가? 포기했던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가? 교회를 위해서 했던 기도들,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서 했던 기도들, 비전을 위해서 했던 기도들, 꿈과 소망을 위해서 했던 기도들! 그런 기도들 중에서 포기하고 잃어버린 기도가 무엇인가? 그런 묵은 기도의 제목을 다시 끄집어내서 하나님께 올려드려 보시기 바란다. 올해는 기도의 삶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영적인 권세자들이 되어 보시기 바란다.

우리는 때로 엉뚱하게 기도할 수도 있고, 불완전하게 기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도의 힘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들으시는 분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승리하시기 바란다. 적극적 신앙으로, 믿음의 기도로 올해가 정말 “삶이 기적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