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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받은 사명을 축복이 되게 하라.(민 14:26-35)


[성전꽃예술 해설: 여름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무더위속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푸른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적인 사항은 출애굽 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 14:28절을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못 살겠다, 죽겠다,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니 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말한 대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밟아보 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9절 이하를 보면, “시내산에서 20세 이상으로 계수되었 던 사람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32절과 33절을 보십시요.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 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시체가 될 것이고, 후손들은 그 시체가 소멸되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광야-가나안”으로 이어지는 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출애굽 했다고 곧바로 가나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연단을 받았다고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출애굽으로 끝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연단받고 끝났습니다. 40년을 고생하고도 약속을 얻지 못하고, 기업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이 진짜 축복이 아닙니다. 진짜 축복은 무엇입니까? “가나안”까지 들어가야 진짜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세대들이 모두 광야에서 시체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의 발단이 “가데스바네아” 사건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들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탐꾼들이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송이 가지, 석류와 무화과 열매를 들고 왔습니다. 그것으로 가나안의 풍요로움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민 13:28절을,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정탐꾼들이 세 가지로 부정적 인 보고를 합니다. 첫째는 “거주민이 강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읍이 크고 견고하다”는 것이고, 셋째는 “거인족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워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싸우러 가면 안 된다는 논리를 말한 것입니 다.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 논리를 뒷바침하려고, 민 13:32절에서 “가나안 땅을 악평했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주민들을 삼키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주민들을 삼킨다”는 것은 ‘메마르고 척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땅 이 너무 좋기 때문에, 열국이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애굽 땅에서든지 광야에서든지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면서, “그 땅은 아름다운 땅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 14:9)고 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세대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화가 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세대들이 모두 광야 에서 시체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죽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니까, 그 말한 대로 광야에서 다 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민 14:35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일이 누구의 잘못입니까? 물론 출애굽 세대들 스스로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런 잘못을 하도록 만 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12명의 가나안 정탐꾼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하셨습니다. 민 14:36절과 37절 입니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 람 /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게 죽지 못했습니다. “재앙”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막게파’는 구약 성경에서, 주로 ‘전염병’을 말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재앙”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악평”으로 “모세를 원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잘 묵상해 보 십시요. 본래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람들입니까? 기억하십니까? 민수기 13장을 보면, 가 나안 정탐꾼에 대한 정보가 나옵니다. 민 13: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탐꾼으로 “각 지파 중에 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을 선발해서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민 13:3절을 보면,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수령”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로쉬’가 “지도자”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광야 시대, 이스라엘 지도자의 기본적인 기준이 무엇입니까? 출 18:21절 이하에 따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기준에 맞는 사람을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도자가 되는 능력이 세상의 기준과 완전히 다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둘째는 진실해야 합니다. 셋째는 불의한 이익을 미워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앙이 바르게 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대목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했던 12명이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기준에 맞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특별한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즉, 그들만 특별하게 신앙이 좋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10명도 자기 지파 안에서 특별하게 신앙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출발할 때, “처음 믿음”은 비슷했습니다. 별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달라졌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더욱 신앙이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반면에 10명은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의 장벽이 거대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다 이기신다고 믿었습니다. 아무리 큰 시련과 환난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기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반면에, 10명의 정탐꾼은 “현실”에 붙잡혔습니다. 현실의 거대의 장벽, 인간의 한계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안 된다,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니까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보니까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여러분, 12명의 정탐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똑같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최소한 비슷한 믿음을 보여줬기 때문에, 지도자로 선택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이게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믿음으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명을 수행하고 난 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민 14:37절을 보십시요.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라고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사명이 재앙”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사명을 수행하고 난 뒤에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재앙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영광스러운 사명의 자리에서, 재앙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민 14:38절을 보면,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 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 존했습니다. 시내산에서 출발할 때, 계수했던 20세 이상의 성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했습니다. 모세 와 아론도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들은 끝끝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업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명이 축복이 되지 못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사명 이 축복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라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게 하시 기 바랍니다. 사명을 받았다고 축복이 아닙니다. 사명을 수행했다고도 축복이 아닙니다. 사명이 재앙이 되었던 10명의 정탐꾼들을 잘 묵상해 보십시요. 가나안 정탐이라는 사명을 잘 수행했습니다. 임무를 제대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언어”입니다. “악평”을 쏟아낸 입이 문제였습니다. 일을 잘 하고 말로 모든 성과를 엎어버린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일을 잘하고, “말로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그들은 그렇게 되었을까요? 민 14장에서,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대조가 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원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악평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들 중에서 누구도 거짓을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습니다. 똑똑한 머리로 땅을 분석하고, 가나안 족속을 분석하고, 가나안 성읍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이 빠져 있습니다. “언약의 말씀”이 빠져 있습니다. 자기 생각만 이야기했습니다. “믿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엇을 말했습니까? “믿음”을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땅과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온전히 따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 14:24절에서,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 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 하리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그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루아흐’입니다. ‘루아흐’는 본래 ‘영, 바람, 호흡’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의 “영”이 그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이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영은 하나님께 민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 고, 하나님의 목적에 민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고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 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보다 현실에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영에 민감하지 않고, 세상에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했던 말은 분명히 사실적인 말이었지 만, 그 사실적인 말들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영에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다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사명이 축복이 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서는 하나님의 영에 민감해야 합니다.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 붙잡혀서, 환경에 붙잡혀서, 믿음 없는 것처럼 살면 안 됩니다.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는 자로 살 아야 합니다. “현실적”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 긍정이라고 했습니 다. “나로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됩니다.” 이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나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주저 앉으면, 그대로 끝나버립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비전을 주시 고, 약속을 주시고, 소망을 주신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실재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도라는 이름이 사명이고, 주어진 직분이 사명입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것도 사명이고, 교회를 섬 기게 하시는 것도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에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사명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 28:19-20절 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지상대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큰 사명을 주신 “주님을 온전히 따른 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일하면서, 섬기면서, 봉사하면서, 희생하면서, “악평”을 쏟아내면 안 됩니다. 불평하고 원망해서 사람들을 낙담하게 하면 안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성도에게 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교회가 부흥되고, 가정과 생활이 복되고, 나라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꼭 기억하십시요. “주님께 받은 사명이 축복이 되게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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