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 안에서”라는 고백의 무게



“주님의 뜻 안에서”라는 고백의 무게(마 6:5-8)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게 된 배경이 눅11장에 나온다. 눅 11:1절,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당시에 유대교 안에는 기도문을 가르쳐주는 전통이 있었다. 세례 요한도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처럼, 자기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종교적 생활이 아니라 진짜 진리가 무엇이고, 그 진리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려고 했다. 그때 알려주신 것이 “주기도문”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 훨씬 능력있는 기도가 된다.


1. 기도에 있어서 두 가지를 버려야 한다.


마 6:5-8절은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알려주시기 전에 말씀하시는 서론에 해당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을 닮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그 중에 하나가 외식이다. 마 6:5절에 보면,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여기서 “외식하는 자”는 말이 ‘휘포크리타이’인데,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사람, 위선자’라는 뜻이다. 기도하는데,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다.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처럼 기도하는 사람을 말씀하신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명색이 랍비인데, 기도를 잘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신앙생활 한 지가 몇 년인데, 내게 기도를 시키면 어떻게 하지? 내가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명색이 전통있는 가문의 바리새인인데,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자랑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가면을 쓰고 흉내내는 기도’를 지적하신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지 말아라. 그런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또 하나가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여기서 “중언부언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형이 ‘밧톨로게오’인데,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라는 뜻이다. 밧톨로게오는 ‘생각없이 재잘거린다’는 뜻의 ‘밧토스’라는 단어와 ‘이성, 생각, 교리, 진리’라는 뜻의 ‘로고스’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기도가 ‘밧톨로게오’ 이다.


‘밧토스’라는 단어는 ‘개구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밧톨로게오’라는 말은 개구리가 ‘개굴개굴’ 하면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처럼,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기도를 반복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밧톨로게오’ 이다. 왕상 18장에서 엘리야와 대적했던 바알 숭배자들이 갈멜 산에서 했던 기도가 그런 것이다. 그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왕상 18:26)라고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2. 성도란 하나님께 완전히 자기를 맡겨야 한다.


성도는 언제나 십자가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죽어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단 번에 죄 값을 갚아 버리셨다. 우리가 당해야 할 죽음을 주님이 당하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 이후에 영원한 “천국 영생”의 삶이 되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이다.


성도는 이런 십자가의 은혜와 감격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도란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지만, 십자가의 은혜로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성도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겨야 한다. 성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에 하나가 ‘맡기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다윗은 맡김에 대한 정의를 시적으로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시 62:1절과 5절에 반복해서 사용한 표현이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여기서 “잠잠히”라는 말은 ‘자기의 주관이나 자기 소욕, 자기 욕망, 자기 소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뜻이다. 이것이 “잠잠히”라는 말의 의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수도 있고, 죽이실 수도 있다. 그런데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나님 뜻대로 하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맡김의 진정한 의미이다. ‘내 바램, 내 의지, 내 생각, 내 욕망’을 다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뜻이 나를 죽이는 것일 수도 있고, 나를 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자기를 꺾는 것이 맡김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기의 의지와 욕망을 적용하면 적용할수록 세월을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얻으려고 했던 것을 결국에는 다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성도란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그것을 예수님은 자기가 가르쳐 주시려는 기도에 담아주셨다. 그래서 세 번째로 드리는 말씀이, 진짜 기도란 “주님의 뜻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성도란 언제든지 “주님의 뜻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란 무엇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란 ‘프로슈케’이다. 헬라어 ‘프로슈케’는 단순하게 ‘기도’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더욱 깊이가 있다. 헬라어로 ‘기도’ 라는 단어에는 두 개의 말이 있다고 했다. ‘데에시스’라는 말의 기도와 ‘프로슈케’라는 말의 기도가 있다고 했다. ‘데에시스’는 하나님께 조르듯이 하는 기도이다. 무언가 부족하고 결핍된 것을 탄원하고 간청하는 기도이다. 이에 비해서 ‘프로슈케’는 나의 부족을 채워달라고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고 했다.


프로슈케는 ‘~을 향하다’라는 뜻의 ‘프로스’와 ‘원하다, 고대하다’라는 뜻의 ‘유코마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오로지 한 방향을 원한다는 것,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라는 한 방향을 향한다는 것이 프로슈케이다. 때문에 프로슈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조절한다는 의미가 있다. ‘프로슈케’라고 하면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지고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 나온 예수님이 하신 모든 기도, 예수님이 말씀하고 가르치신 모든 기도가 ‘프로슈케’이다.


자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며, 자기의 생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구하다, 간청하다, 묻다’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이테오’이다. 8절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아이테오’란 그런 것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원하는 욕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무엇을 약속했다고 생각해보라. “시험을 잘 치르면 무엇을 사주겠다. 부모님 말을 잘 들으면 무슨 선물을 해주겠다.” 이런 약속을 했는데, 자녀가 약속한 대로 행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준다고 약속한 것을 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려고 작정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이테오’이다.


그러니까 거듭해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이테오’이고, ‘프로슈케’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구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겠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깨달아서 믿고 구하는데, 어떻게 응답이 이루어지기 않겠나? 그렇게 구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6절을 다시 보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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