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한 걸음만 더!(수 3:14-17)
- 신애교회
- 7월 3일
- 4분 분량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이야기입니다. 요단 강가에 도착하고 3일 후에 요단을 건너게 합니다. 단을 건너는데 조금 특이한 게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사장을 선발해서 제사장들로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궤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거리를 2천 규빗쯤 떨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912미터쯤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900m쯤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자세히 확인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으로 들어서자 흐르던 요단강이 말랐고 그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다는 것이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광야 생활로 인도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요단 동편을 통해 강을 건너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는데 굳이 강을 건너게 하셨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 시기도 방법도 특별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발견해야 됩니다. 말씀을 많이 읽었다고 하더라도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하고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는 그런 신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 3:14절)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떠난다'는 히브리 원어적으로는 ‘장막의 말뚝을 뽑을 때에’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에 말뚝을 뽑을 때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는 의미는, 장막을 놔두고 떠난다는 것이 아니라 장막에 말뚝을 뽑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장막에 말뚝을 뽑고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장막을 걷고 있을 때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백성들이 장막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장막을 거두기 시작할 때에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을 칠 때의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텐트를 칠 때 성막을 중심에 놓고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벌려서 진영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 진영의 모습이 십자가 형태의 진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십자가 형태의 진을 이루고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이 장막을 거둘 때 제사장들의 언약궤를 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11월 2일에 총력 전도를 할 것이라고 선언하기 전에, 여러분이 마음으로 먼저 준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말씀이 딱 떨어졌을 때 준비하고 있던 것을 행동하는 옮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에 따라서 생활했다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믿음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식에 따라서 행동하는 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경험에 따라서 행동하는 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어떤 지식과 어떤 어떤 능력과 어떤 재물, 어떤 소유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든지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사장들의 경우를 보면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더 나아간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 3:15절)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추수 때는 물이 강둑에 흘러 넘쳐서 범람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페르몬 산에 있는 눈이 녹는 시기입니다. 눈이 녹아서 물이 불어나기 때문에 강폭이 무려 1.5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유속도 굉장히 빠릅니다. 바로 이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로 하여금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요단강으로 언약궤를 메고 들어가야 되는데, 그들이 거센 강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기들의 거리가 최소한 900미터라서 이 사람들이 물살에 휩쓸렸을 때에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각오로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발이 물에 잠기기까지 걸음이 한 걸음인데 그 한 걸음이 결국 죽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 한 걸음입니다. 어찌 보면 쉽지만 어렵기도 한 것입니다. 인생이 편안할 때는 한 걸음 걷는 거 별로 어렵지 않지만 인생이 힘들 때는 한 걸음이 참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널 때 하나님께 항의할 수 도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너무 유속이 빨라요. 물도 깊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좀 기다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참 신비한 것은 그 한 걸음을 딛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으로 들어간 제사장들도 딱 한 걸음인데 그 한 걸음을 걸으니 하나님이 그 다음부터는 그들의 인생을 붙잡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수 3:16절)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였더라.
사르단이라고 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머물고 있는 진영으로부터 북쪽으로 20킬로미터, 아담 성읍은 그 사르단에서부터 북쪽으로 5킬로미터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물벽이 세워진 곳까지의 거리가 25킬로미터입니다. 그러니 25킬로미터 위에 있는 물들은 계속해서 흘러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물이 당장에 마른 게 아니고 요단강에 들어간 후로 물은 계속해서 흘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생활하면서 때로는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요청하실 때가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다리라도 하면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날을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출 14:21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되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바다가 갈라져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바다가 순식간에 갈라진 게 아니라 바람이 밤새도록 바다를 물러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을 조금씩 조금씩 물러가게 했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홍해에 다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원망했는데 하나님은 그 원망하는 마음이 바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는 삶으로 변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요단을 건너려면 우선적으로 내면에 자기 포기가 이루어졌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생각과 자아와 자기 관념을 포기하고 한 걸음을 걸어나간 것입니다. 성도가 힘들어도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힘든 때에도 한 걸음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부터는 갈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 한 걸음을 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도 걸음을 뗄 때에 언약궤를 의지했습니다.
(갈 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자기를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아 죽게 한 사람, 그 죽음에 자기를 내주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작정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님께 자기를 맡겨드린 사람 그런 사람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클러치 플레이어라고 하면 그 게임에 변화를 주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특징은 마지막에 더 높은 경기력을 보이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클러치 선수들은 실패했어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스타일대로 경기를 합니다. 클러치 선수들은 강심장입니다. 실수했다고 울거나, 넘어졌다고 좌절하지도,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때나, 어려울때나, 괴로울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한 걸음 발을 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자에게는 매달리고 붙잡을 수 있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고 말을 끄집어내는 게 수치스럽고 뭔가 창피하게 느낄때에도 한걸음을 떼시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주장해 나가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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