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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건너야 이기는 싸움이 있다.(출 14:10-14)


위기가 아니라 섭리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직후에 처음으로 맞게 된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위기냐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의 안목으로 보면 위기인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섭리입니다. 인간의 안목에서 위기인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위기가 아닙니다. 홍해의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는 스토리입니다. 이 스토리는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고, 하나님이 친히 완성하신 구원 역사입니다.

출 14: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하신 내용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출 14:2)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꼼짝없이 애굽의 군대에 갇힌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출 14:3절에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닷가에 장막을 치면, 바로가 쫓아와서 “이스라엘이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두신 것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사방이 꽉 막힌 곳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십시요. 유월절을 지내면서, 서둘러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급하게 애굽에서 빠져 나온 뒤에 장막을 치고 숨을 좀 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장막을 치고 쉬어 볼까 했는데, 애굽의 군대가 뒤에 붙어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있는 상황입니다. 꼼짝없이 애굽의 군대에게 갇힌 꼴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막다른 장벽 앞에 세우실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나 건강에서 장벽을 만나고, 가정이나 신앙생활에서 장벽을 만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위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지 못할 상황이고, 애굽의 군대와 싸워서 승리하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에 “위기”가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변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변수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이런 상황이 위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깊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기회인 것입니다. 실제로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홍해의 역사를 통해서,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님”으로 알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으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떤 “위기”도 위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라.


어쩌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예민하게 느끼고, 의식하고, 체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셔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출 14:1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눈을 들어서 애굽의 군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볼 때는 승리의 기쁨과 찬송이 나갔습니다. 8절을 보십시요.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다”는 말씀에 주목해 보십시요. 히브리어 ‘베야드 라마’는 ‘손을 높이 들고’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담대히 나갔다”는 말은 ‘손을 높이 들고 나갔다’는 말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나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승리한 것처럼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을 때는, 자기들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나갔습니다. 힘과 권능을 선포하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군대가 쫓아온 것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두려움에 빠지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시선은 어떻습니까? 평범한 사람은 “안 되는 상황”을 자꾸 봅니다. 두려움과 염려를 자꾸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눈을 들어서” 애굽의 병거를 본 것처럼, 쓸데없는 데에 “눈을 들어서”(마음을 빼앗겨서) 봅니다. 신자가 눈을 들어서 보아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안 되는 상황”을 보지 말고,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상상 속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실재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나쁘게 보이는 환경이나 상황에 시선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자아가 도전하는 나쁜 본성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홍해를 건너야 이기는 싸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과 싸움을 피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싸우게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싸우신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를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너야 끝나는 싸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를 사로잡았던 옛 애굽과 결별하려면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애굽과 싸워서 이기려면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옛 자아과 결별하려면,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자아와 싸워서 이기려면,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을 맡기고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기를 맡기고 바다를 통과해야 합니다. 자기가 붙잡고 살던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자아가 보게 하는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요.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여러분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때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3절에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만히 서서, 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서라”, 히브리어로는 ‘히트야츠부’인데, 본래는 ‘너회 스스로를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애굽의 군대에 빼앗긴 시선을 되찾으라는 뜻입니다. 두려움에 빼앗긴 마음을 믿음으로 세우라는 뜻입니다. 두려운 상태에 빠져있지 말고, 굳세게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자아와 감정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혼의 상태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불평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볼 수 있게 자기를 굳게 세우라는 뜻이다. 그리고 “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구원하시는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게 됩니다. 섭리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위기라고 느껴지던 것이, 환난과 시련이라고 생각되던 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구원의 주님이신 것”을 체험하게 하시려는 계획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홍해를 건너면 다 이기게 된다.


오늘 말씀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요. “홍해를 건너야 이기는 싸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홍해를 건너면 이기지 못하던 것을 이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군대와 싸워서 도무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면서 이깁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바다 속의 길을 걸었을 뿐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했습니까? 자아가 보게 하던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둘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는 그 모든 일이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일인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를 갈라서 마른 땅이 되게 하신 것이 그 일이고, 좌우로 물벽을 세워서 길을 가게 하신 것이 그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바다로 애굽의 군대를 덮으신 것도 이스라엘을 완전하게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면, 여러분이 붙잡고 씨름하던 일이 풀리게 됩니다. 두려움과 염려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기적과 능력으로 구원하시는 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 홍해를 건넌 뒤에, 이스라엘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출 14:3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여러분에게도 이런 능력과 은혜의 역사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그게 다 위기이고, 시련이고, 환난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는 “능력의 통로, 기적의 통로, 은혜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홍해를 건너기만 하면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홍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들이 보여준 것이 너무 단순하지 않습니까? 어떤 능력을 발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시선을 옮기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요. 모세가 백성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서라, 구원을 보라”입니다. 자아가 보게 하는 것을 자꾸 보면,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니까 자아가 보게 하는 것에서 시선을 돌리십시요. 두려움에 빼앗기 마음, 상한 마음, 부정적인 마음 대신에 믿음을 굳게 세우십시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십시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의 현장에서,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서 발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인 것을 보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서도 경험되고, 교회에서도 경험되고, 직장과 사업과 가정에서 경험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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