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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땅일수록 개척자가 되기에 좋다.(레 2:1-3)


[성전 꽃예술 해설: 연휴동안 기쁨과 휴식을 주시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모여 예배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구약의 제사 중에서 “소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제는 구약의 제사들 중에서 피 흘림이 없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왜냐하면, 추수한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소제”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느하’는 본래 ‘선물, 봉헌물’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소제”라고 번역된 이유는 ‘쏠레트’라는 히브리어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 “고운 가루”라는 말이 ‘쏠레트’입니다. 하나님께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곡식을 “하얀 가루”(즉, 고운 가루)로 제사 드린다고 해서 “소제”라고 번역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하는 원리가 다 이와 같습니다. 짐승을 제물로 드릴 때나 곡식을 제물로 드릴 때나 다 똑같습니다. 살아있는 것으로 드리지 않습니다. 완전히 죽어진 것을 제물로 드립니다. 짐승을 드릴 때는 죽여서 “각을 뜨라”고 했습니다. “각을 뜬다”는 말은 ‘토막을 낸다’는 뜻입니다. 앞 다리, 뒷 다리, 머리, 가슴 등으로 잘라내는 것입니다. 완전히 죽은 것으로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곡식도 추수내서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고운 가루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죽어진 것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고운 가루”로 끝이 아닙니다. 소제를 드릴 때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레 2:13절을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김치를 담을 때, 배추에 소금을 뿌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추의 숨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채나 채소에 소금을 치면, “숨이 죽는다”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숨이 죽어야 다른 양념들과 버무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사로 드려지는 제물이 완전히 죽어야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다 죽여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산 것으로 드려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롬 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잘못 가르치고 배웁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 몸”이란 여러분의 전부를 말합니다. 그 전부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산 제물”이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러분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자기가 살아있으면 하나님 앞에 흠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정욕 과 탐심이 살아있는데 어떻게 흠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를 완전히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난 자 가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누구 때문에 살아난 자가 되었습니까? 다르게 말 하면, 누구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입니다. 롬 11장에서, 바울이 그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의 구원이다 예수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롬 12장으로 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산 자가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죄와 사망으로 죽은 자들이었는데, 어떻게 “산 자”가 되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드려질 때 산 제물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드려질 때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라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나는 죽어지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제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살아있는 몸으로 드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죽어지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몸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게 여러분이 드릴 “영적인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란 그렇게 하나님께 자기를 죽이면서 시작합니다. 자기를 죽여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게 지성소 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지성소의 세 가지 특징이 “순결, 암흑, 침묵”의 장소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지성소는 순금으로 도배된 정육면체의 방입니다. 이게 순결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지성소는 빛이 없는 암흑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쉐키나”(영광의 불꽃)으로 임재하시는 곳이 기 때문에 빛이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침묵의 장소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갈 때 ‘방울 달린 제사장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없는 세마포 옷을 입고 침묵 가운데 들어갑니다. 여기로 들어갈 때, 제사장이 모든 것을 죽이고 들어갑니다. 자기의 생각, 의지, 경험을 다 죽이고 들어 갑니다. 자기의 생각, 의지, 경험이 하나님 앞에서 흠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죽이고, 오로지 한 가지만 살아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임재 의식”입니다. “하나님 이곳에 임하여 주소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임재를 체험해야 살기 때문입니다.


토저는 “여러분이 자신을 비울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밀고 들 어오신다.”고 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나의 생명을 쫓아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부인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까? 앤드류 머레이는 “인간의 생명이 죄와 사망의 능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죄의 권세 아래에 있고, 사망의 능력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부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앤드류 머레이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 만하려면, 자기의 생명을 전적으로 잃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 충만을 경험하려면, 그렇게 자기의 생명을 부인하고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저는 “은폐하는 구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못하게 가리는 구름이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하는 구름을 10가지로 말합니다. 그것은 “교만, 자기 의지, 야망, 나를 위해 주장하는 모든 것, 두려움, 자기 사랑, 돈, 친구들, 자기의 직책,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기도와 금식으로도 극복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래도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을 자기 발 아래 두라고 했습니다. 자기 머리 위에 두지 말고, 자기 발 아래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걸림돌로 작동하는 것이 여러분의 머리로 올라서려고 하면 기도하십시시요. 기도를 통해서, 사라지게 하십시요. 여러분의 발 아래에 놓이게 하십시요. 혼자 기도하는 것으로 안 되면, 서로 기도해 주면서 그렇게 하십시요. 서로 기도해주는 것으로 안 되면,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십시요.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요. 우리도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던 걸림돌이 무너져 나가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으로 그리스도의 광채가 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말씀의 권능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말씀에 의지해서 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모든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교회의 개척자들이 되었습니다. 척박한 우상숭배의 땅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황폐한 땅일수록 개척자가 되기에 좋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터전과 환경이 어렵고, 고단하고, 피곤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직장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흔들 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황폐한 곳에서 새로운 섭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개척자가 일어나고, 황폐한 땅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렵고 고단한 환경을 보지 말고, 고난과 시련을 보지 말고, 실패와 좌절을 보지 말고, 말씀을 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모든 것으로 삼아서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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