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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주저앉지 말라,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겔 37:1-10)


[성전꽃예술 해설: 반년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마음을 드립니다.]


호렙산 기도회를 전후로 해서,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용광로”같은 기 도의 불이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삶”이 쉬운 것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그렇게 살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말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은 강철같이 강한 사람들 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탄의 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사탄이 먼저 그들을 공 격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흔히 ‘거룩한 삶을 살려면 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더욱 중요하다. 즉, 기도하려면 거룩한 삶을 살아 야 한다. 기도가 우리의 환경을 바꾸는가? 그렇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가 기도자를 바꾸어 놓는 다는 사실이다. 기도는 하나님만큼 크다. 왜냐하면 기도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만큼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기도하려면 거룩한 삶을 삶아야 합니다. 기도는 기도자를 바꿉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를 20년-30년을 다녀도 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신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지 못하고, 세속적인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기도자를 바꿉니다. 기도자의 신앙 태도를 바꾸고, 삶의 자세를 바꾸고, 성품까지 바꿉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두 가지 전제조건은 비전과 정열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도 없이는 생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기도”라고 했습니다.


 “부흥”도 기도없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흥”이란 ‘다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흥의 전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이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강하게 체험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체험하면,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됩니다. 선지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말이 인간의 지성에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른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지성으로 불가능 한 것을 말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능한 것을 말하고 행동한다면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말씀을 대언하자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완전히 말라버린 뼈들의 저주가 생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불가 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골짜기로 이끌어서 마른 뼈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겔 37:2절을 보면,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뼈들이 골짜기에 있는데, 그 뼈들이 완전히 메말랐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의 메마른 뼈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물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요.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여기에 있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연합했던 북이스라엘은 130년 전에 멸망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이 연합했던 남유다도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나라가 없고, 민족이 흩어졌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너희들에게 소망이 있겠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신 것입니다. 그 때 에스겔의 대답이 기가 막힙니다. “이 뼈들이 어떻게 살겠어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3절을 보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아신다”는 것이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유다 백성들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살아나게 하시려면 살아나고, 주님이 그대로 두시려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에스겔이 “주께서 아십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라”(4절)고 하십 니다. 그러자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던 마른 뼈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사람의 모양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생명이 없습니다. 8절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 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9절)고 합니다. 에스겔이 “아멘”하는 믿음으로,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9절)고 했습니다.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사람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호흡은 죽은 자를 다시 살아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현대의 의술이나 과학으로 만들어낸 호흡으로도 죽은 자를 다시 살아 나게 할 수 없습니다.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호흡”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은 죽은 자, 완전히 마른 뼈가 되었던 자들도 살아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창 2:7절에서 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했다. 티끌로 사람의 형상을 지으셨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이때 “생기”(즉,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창조라면, 에스겔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하나님의 재창조”입니다.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을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이 무너지고 소망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오면,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으로 되지 않던 것이, 하나님 의 호흡으로는 됩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호흡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의 숨결”을 받으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게 기적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 뼈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이 뼈들이 본래 누구였습니까? 11절을 보면,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마른 뼈들이 본래는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엇 이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뼈가 말랐고, 소망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는 “절망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들어가자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났습니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2절 이하를 보면, “무덤을 열고 나와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16절 이하를 보면, “유다의 막대기와 에브라임의 막대기가 하나가 되게 하신 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었던 백성을 하나가 되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23절 이하를 보면, “사람들을 정결하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다윗이 영원히 왕 노릇을 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공동체의 회복, 인간성의 회복, 관계의 회복, 영적인 삶의 회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보았을 때,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령에 의해 새롭게 회복된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게 되는 “하나님 나라”를 말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인해서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숨을 내쉬며”라는 말이 헬라어로 ‘엠프휘 사오’인데, ‘안으로 숨을 불어 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숨을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그러 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죽음과 같은 두려움에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나기는 했지만, 생명력이 강력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인 모양이지만, 생명이 되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성령이 임하시자,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마가 다락방의 교회에서 온 세계로 복음이 증거되는 교회로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모든 변화와 능력과 권세와 만족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뜻을 정하시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기도를 통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저절로 따라붙게 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붙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고,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고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 분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소망 없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것에 의심하지 마십시요. 삶이 절망이라도 말아야 합니다.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에스겔이 대답한 대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입니다. 나도 그렇게 믿고 기도합니다.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그냥 청지기이며, 주님의 일꾼일 뿐입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쓰임 받으면 됩니다. 맡겨 주신 것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맡겨주신 일을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는 주님이 하십니다. 교회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주저앉지 마십시요. 성령이 임하시기를, 부흥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성도가 되십시요.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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