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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자리가 지성소가 되게 하라


기도의 자리가 지성소가 되게 하라

(마 6:5-8)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란 무엇이라고 했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란 ‘프로슈케’라고 했다. 자기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프로슈케’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그런 기도를 올려드릴 때, 어떻게 하라고 했나? 오늘은 그것을 세 가지로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다.


1. 성전이 성전이 되게 하는 자리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마 6:6절에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했다. 어디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하는가? ‘골방’이다. 여기서 골방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메이온’은 ‘창고, 내실, 침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에서 보면,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다. 혼자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너의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너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라, 너의 침실이나 창고로 들어가라”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깊은 가르침이다. ‘타메이온’ 이라는 골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리쉬카’이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골방은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성물을 다루는 곳이었다.


대상 23:28절을 보면, “그 직분은 아론의 자손을 도와 여호와의 성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또 모든 성물을 정결하게 하는 일 곧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과”라는 구절이 나온다. 느 10:39절에서는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고 했다. 앞선 구약성서의 두 구절에 나오는 “골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리쉬카’이다. 이 방은 하나님의 성물을 다루는 방이다.


성전을 지을 때 3층으로 성전을 지었는데, 층마다 방이 있었다. 그 방들을 ‘리쉬카, 곧 골방’이라고 했다. 성전 안에 30개쯤 되는 작은 방들이 있었는데, 그 골방에 하나님의 성물을 놓아두거나, 그 곳에서 성물을 다루었다. 그러니까 본래 그 방은 기도하는 방이 아니라 성물을 다루는 방인 것이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진설병 떡을 진설하고, 분향단을 분향하고, 정금 촛대에 불을 켠다. 그런데 이렇게 성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재료를 보관하거나 만드는 방이 ‘리쉬카’이다.


그러니까 아무 곳에서나 떡을 만들고, 성소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다. 레위인들이 “골방”에 들어가서 성소에 필요한 것을 만들었다. 성전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전이 되는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성물들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처소이기 때문에 성전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전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처소로서의 준비는 건물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전을 채우는 성소의 성물들이 하나님 임재의 처소다운 성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성물을 준비하고, 보관하고, 다루는 장소가 ‘리쉬카, 곧 골방’ 이었다. 그러니까 ‘리쉬카’는 성전을 진짜 성전이 되게 하는 방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그 ‘리쉬카’에 해당하는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어떤 물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조용히 혼자서 기도하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성전이 성전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방으로 들어가라는 영적인 의미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서, 성도가 해야 하는 첫 번째가 거룩이다. 성전이 성전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임재와 만나기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거룩에 도달할 수가 있나? 성전이 성전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공간 중에서 가장 깊은 곳이 어디이겠나? 그렇다. 바로 지성소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인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만나지게 될 때,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가 거룩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인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반드시 짚어야 한다.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무엇을 경험한다고 했나? 하나님의 임재라고 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만나면 살고, 만나지 못하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하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임재의 체험이, 성도로 하여금 진짜 성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성도가 기도할 때 어떤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영적인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기도의 자리가 지성소가 되어서 하나님의 임재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과 만나는 영적인 체험이 우선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성소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안 된다. 그런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주인이 되시기를 구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로잡으시게 해야 한다.


3.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라는 것이다.


지성소, 하나님과 만나는 처소로 들어가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문을 닫아야 한다.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타메이온, 곧 골방’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성소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 문을 닫으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특히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정욕과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문을 닫아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임재만을 기대하고 생각하면 된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다. 내 욕망이 하나님의 계획과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과 뜻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조정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 임재를 실재적으로 경험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프로슈케’이다. 자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며, 자기의 생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다. ‘구하다, 간청하다, 묻다’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이테오’ 라고 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8절 말씀을 다시 보자.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아이테오’란 그런 것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원하는 욕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전에 교회학교에서 야외예배나 등산을 하든지 성경학교를 하면, “보물찾기”라는 것을 했다. 선생님들이 일정한 구역을 정해서 쪽지를 숨겨 둔다. 그 쪽지에는 선물 목록이 들어 있어서, 열심히 찾았던 기억이 있다.


자, 이제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나? 선생님들이 알려준 구역에서 찾아야 한다. “얘들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보물이 숨겨져 있으니까, 이 안에서만 찾으면 된다.” 지정해 준 구역에서 열심히 찾아야 한다. 그런데 간혹 보면, 그 구역을 벗어나서 찾는 아이들이 꼭 있다. “아무개야,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거기까지는 가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해 주어도, 구역 밖으로 나가서 열심히 찾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보물을 찾겠나? 찾을 수가 없다. 약속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나? 약속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시려고 작정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목적이 있으시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그 약속 안에서 구하고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거듭해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이테오’이고 ‘프로슈케’ 라고 말씀드렸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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