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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믿음이 커지면 세상은 작아진다.




내 믿음이 커지면 세상이 작아진다.(창 24:1-9)


오늘은 청지기 주일이다. 성서적으로 청지기란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청지기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주인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눅 16장에 보면, 불의한 청지기가 나온다. 그가 왜 불의한 청지기라고 불려지게 되었나? 눅 16:1절 말씀에 답이 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여기서 “낭비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디아스코르피조’인데, ‘의무를 게을리 하다, 자금을 횡령하다’는 뜻이 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이 맡겨 놓은 것을 다른 목적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불의한 청지기가 누구냐면 바로 우리 인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건강과 시간과 재물을 주셨다.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냐면 하나님의 것이다. 생명도 시간도 건강도 재물도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그 소유가 누구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나? 주인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소유주가 되신다면,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쓰여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의한 청지기처럼 산다.


인생이란 결국 청지기 인생이다. 그런데 청지기 인생에는 두 종류의 길 밖에는 없다. 불의한 청지기가 되느냐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느냐, 이 두 종류의 길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하고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서 칭찬받을 수 있을까?


1. 목적을 따라가는 사람이 선한 청지기가 된다.


창세기 24장에 오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결혼시켜서 후손을 이으려고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가나안의 이방 여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친척들이 있는 곳에 가서 며느리를 구해 오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따르고 있다.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은 늙은 종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실하고 충성되게 임무를 감당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가서, 주인이 시킨 명령을 그대로 수행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간다.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종으로서, 주인의 목적에 따라간다. 이처럼 충성스러운 종은 자기의 목적이 아니라 주인의 목적을 따라간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늙은 종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마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주인에게 비난당한다.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다. 그러면서 그 종을 내 쫓으라고 명령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30) 그는 버려진 종이 되었다. 쓸모없는 종이 되었다. 주인에게 비당받아 마땅한 종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나? 주인이 자기에게 맡긴 것에 충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인이 맡겨놓은 달란트를 주인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어느 때에라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할 때 드러나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의 영광은 고난 중에라도 환난 중에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사람에게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따라갈 때, 하나님이 높아지시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겨냥해서 사용할 때 드러나는 것이다.


2. 은혜를 따라가는 사람이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된다.


1절 말씀이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의 종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2절,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여기서 종의 특징은 첫째가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맡았다는 것인데, 그가 아브라함에게 신뢰받는 종이었다는 뜻이다. 둘째는 아브라함처럼 늙은 종이라는 것인데, 이는 오랜 세월을 아브라함과 함께 지내왔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오랜 세월을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종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배웠겠나? “믿음”이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고, 은혜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웠다. 아브라함의 인생이 하나님을 향해서 곧게 뻗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도 실수하고 넘어지는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도 은혜로 사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성도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그러니까 은혜로 사는 법을 잘 알아야 한다. 성도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야 한다. 내게 없는 것을 보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는 불평과 원망이 자기를 사로잡으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살아야 한다. 받은 은혜에 따라서 사랑의 덕을 세우고, 감사의 능력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3. 언약을 따라가는 사람이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된다.


여러분은 신부감이나 신랑감을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나? 아브라함이 아들을 위해서 신부를 고르는 기준은 딱 하나이다. 3-4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무슨 기준인가? 이방 여인은 안되고, 무조건 내 고향 내 족속 중에서 여자를 고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 이삭을 통해서 나오는 후손들에게 이방인의 피가 흐르지 않도록 한다. 만일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면 이방의 우상 문화와 불신앙의 문화가 섞여 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이 순결하게 이루어지도록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성도란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성도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진리로 인정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결론이 어떤 것인가? 잠 23:18절에 그에 대한 대답이 있다.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KJV 성경에는 “장래”라는 단어를 “future”가 아닌 “end”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도전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장래는 단순한 미래가 아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서 사는 모습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래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다. 마침내 찾아오게 되는 그 날, 그 시간, 그 순간이다. 그 마지막 순간이 어떻다는 것인가? 그 마지막 순간이 보장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선한 청지기는 열심히 심을 따름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서 열심히 심기만 하면 된다.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새해에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심으시는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되시기 바란다. 기도를 심고, 사랑을 심고, 봉사와 헌신을 심고, 은혜를 심으시기 바란다. 거기에서 열매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풍성히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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