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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반응하지 말고, 기회에 반응하라.(출 14:21-31)


두 진영의 서로 다른 이야기


오늘은 “홍해의 기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홍해의 기적은 여러 기적이 중첩되어 있는 굉장히 재미있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이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애굽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지만, 애굽은 전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스토리는 두 진영의 이야기로 나뉘어집니다. 출 14:1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진영의 뒤로 옮겼더니, 구름 기둥도 뒤로 옮겨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영이 둘로 나뉩니다. 그런데 두 진영의 차이가 너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진영은 밤이 밝은데, 애굽 진영은 구름과 흑암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호쉐크’는 출애굽 전에 있었던 아홉 번째 재앙과 똑같은 흑암입니다.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흑암‘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뉘어진 두 진영의 차이가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미래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빛’이고, 애굽에게는 ‘암흑‘입니다. 한쪽은 구원이고, 한쪽은 심판인 것이니다. 실제로 홍해의 스토리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중첩된 기적의 스토리


여기에 나오는 중첩된 기적들을 보십시요. 우선 21절을 보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었다고 했습니다. 이 바다가 순식간에 갈라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밤새도록”입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바다가 갈라지는 것도 기적인데,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모든 사람의 안전입니다. 노약자, 병자, 어린 아이들, 수레 등이 안전하게 지나려면 마른 땅보다 좋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물러간 젖은 땅이 아니라, 그 땅마저 마른 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게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을 돌보시는 “자비”입니다.

그 다음으로 22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바다 가운데를 행진하는데, 그들의 좌우에 물벽이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모래로 벽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물을 얼려서 얼음벽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돌을 옮겨다가 돌벽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물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물은 쏟아져 내리는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쏟아져 내리지 않고 벽을 이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씀 속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이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너는 동안, 하나님께서 강한 바람을 계속해서 일으키시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바람을 밤새도록 불게 하셔서, 계속해서 물을 밀어내고 물벽을 유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강한 바람 속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물벽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강한 바람인지를 상상해 보십시요. 얼마나 바람이 강해야 바다를 일으켜서 벽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 바람 앞에서,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갔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까?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물벽을 세우고 있는 중에도, 그 바람이 이스라엘의 행진하는 길에는 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완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길입니다. 22절에서,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라고 할 때, 히브리어 ‘라헴’을 해석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그들을 위해서’란 뜻이라고 했습니다. “바람과 물벽,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다 이스라엘 백성들, 즉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애굽 군대는 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군대는 질서가 생명이 아닙니까? 그런데 애굽의 군대가 어지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25절에서는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와야싸르 에트 오판’, 이 말의 본래적인 뜻은 ‘바퀴를 들어 올렸다’는 뜻입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take off”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병거 바퀴를 “take off”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퀴를 들어 올리니까 달리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이게 상식입니다. 바닷물을 들어 올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라서, 애굽의 철 병거라도 들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그대로 바람입니다. 강풍이 그대로 강풍입니다. 그러나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없습니다.

언약 안에서 이해되는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은 세상을 상식으로 다스리시지만, 성도는 기적으로 다스리십니다. 26절 이하를 보면, 애굽의 군대를 물로 덮어서, 하나도 남게 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의 결말이 무엇을 위한 일이었습니까? 30절에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핵심입니다.

다윗은 시 121:4절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홍해의 기적을 보면서, 정말로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밤새도록 이스라엘을 돌보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성도가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 안에서, “십자가 언약” 안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애굽의 군대를 모조리 수장하시는 것이 맞나? 아말렉과 싸워서 ‘남녀노소’와 동물들까지 모두 진멸하게 하시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 알아야 합니다. ‘헤세드’는 ‘언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언약 안으로 들어와야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십자가는 사랑입니까, 저주입니까? 십자가는 그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입니다. 반면에 언약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됩니다. 엄밀하게는 그 사람의 죄가 저주와 심판이 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고난이 “있느냐 없느냐?”, 내 인생이 내 맘과 뜻대로 “되느냐 안 되느냐?”, 이런 것에 집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주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느냐? 예수 십자가의 언약 아래에 내 생명이 매달려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버려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아니라, 기회에 반응하라.

오늘 말씀 제목이 “문제에 반응하지 말라, 기회에 반응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과정을 보십시요. 원망도 불평도 있었습니다. 언제 그랬습니까? 문제에 반응할 때입니다. 문제에 반응할 때는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널 때는 어떻습니까? 기회에 반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당연한 기적에 반응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출 14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표현은 사실 “밤새도록”이란 단어입니다. 왜 “밤새도록” 동풍이 불었다고 했습니까? 왜 “밤새도록” 바다가 물러가게 하셨다고 했습니까? 기도입니다. 밤새도록 바람이 불고, 밤새도록 바다가 물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밤에 모세가 “밤새도록” 손을 들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기도하는 모습을 따라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모세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자기들을 구원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이란 그들의 원망이 기도로 바뀌고, 불평이 기도로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불평과 원망이 기도로 바뀌는 순간, 역사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21절,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기도로 바뀌었던 시간 속에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물이 갈라져서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기도로 바뀌는 순간에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기도로 바뀌는 시간을 통해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그 문제를 통해서 섭리하실 하나님께 주목하십시요. 문제에 반응하기 말고, 기회에 반응하라는 것은 “문제를 보지 말고, 기회를 보라”는 말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말고, 섭리로 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습니다. 더구나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들입니다. 사랑하시는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피로 값 주고 사신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해되지 않습니까? 지금 닥쳐 있는 어떤 문제라도 “섭리”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하면 회개로 나가고, 기도가 필요하면 기도로 나가고, 순종이 필요하면 순종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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