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언약 안에 있으면 혼자가 아닙니다.



언약 안에 있으면 혼자가 아닙니다.(창 20:8-18)


창세기 20장을 읽어나가면, 하나님께서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아브라함의 잘못을 죄가 없는 아비멜렉에게 뒤집어씌우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아브라함을 혼내시는 장면은 보이지 않고, 아브라함 때문에 실수한 아비멜렉을 혼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7절에서, 잘못을 저지른 아브라함에게 오히려 기도를 받으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아비멜렉이 자기의 양과 소와 종들을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바친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땅을 차지하라고 한다. 게다가 또 사라를 불러서 은 천개를 가져다 바친다. 자,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발견해야 할까?


1.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자비를 발견해야 한다.


성경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느냐를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라. 도덕과 윤리로 따지고 비교하면 아비멜렉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것이 일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본문을 보면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벌은 아비멜렉이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길에 있는 도덕적 완결성을 보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도덕적인 완결성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아비멜렉의 도덕성은 아브라함보다 어떤 의미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과는 관계없다.


도덕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 안에 있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구원은 바로 그런 것과 관계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다. 구원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연약한 사람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렇게 하신다. 이것이 창세기 20장을 관통하는 복음인 것이다.


2.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당신의 거룩함 안으로 끌어안으시는 분이다. 우리가 언약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과 은혜의 영역으로 끌어안으신다. 아비멜렉이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살기 위해서 중요한 일을 행한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지자라고 하셨다. 이게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실수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다. 벧전 2:9절에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라고 했다. 성도는 실수하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여전히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 분의 소유된 백성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기도를 해주면 아비멜렉이 축복을 받고, 기도를 안 해주면 그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해 준다. 그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한다. 아비멜렉은 자기를 돌이켜야 할 시점에, 하나님을 거절하지 않고 돌이켰다. 그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붙잡아서 기도의 축복을 받았다. 사람은 이처럼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신앙이란 자기중심의 경계선 안에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내 중심을 깨고 주님께서 내 안에 들어와서 주인이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경계선 안으로 치고 들어가셔서 거기에 십자가를 꽂기 원하신다. 그렇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아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심령이 애통하는 자가 될 때,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말씀이 심령과 골수를 쪼갠다. 그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고, 참된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한다.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치료하셨다. 이 때 아브라함은 신선한 충격 속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다. 사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구나. 상황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구나. 분명히,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나를 다르게 대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신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가문에 닫혀 있던 태의 문을 여셨다. 그러니까 깨달아지는 사실이 있다. ‘내가 기도하면 응답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구나! 나도 내 자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겠구나! 그러면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겠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도가 다 이렇게 똑같다. 성도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다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감싸고 계신 것처럼 성도를 감싸고 도우신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비멜렉이 죽이려 들어도, 환난과 시련이 덮쳐 오더라도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도는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통로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능력을 얻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절대 비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다.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안 되던 사람들이 와서 되어 가지고 돌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이다. 마음이 괴롭던 사람들이 와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가는 곳,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구든지 기적을 체험하는 곳이 교회이다. 병든 자가 오면 병이 낫게 되고, 문제 있던 가정이 치유되고, 불순종의 자녀들이 순종하게 되고, 변화를 받고 돌아가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 자아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주인 되시도록 인정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영광의 보호 아래서 날마다 능력있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