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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신앙과 위대한 삶


적극적인 신앙과 위대한 삶(창 18:22-33)


은혜를 받으면, 사람에 대해서 관대해진다. 은혜를 받으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은혜가 없으면 사람이 싫어지고, 삶의 환경이 힘들어지고, 마음이 억울해지고 그런다. 그런데, 은혜가 임하면 달라진다. 사랑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힘이 생기게 된다. “누구를 용서해야지”라고 해서 용서가 되고, “누구를 사랑해야지”라고 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은혜가 들어오면, ‘저절로’ 용서가 되고, ‘저절로’ 사랑이 나가게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그랬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확인받았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해결받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나님을 섬긴 것도 은혜인데, 약속을 확인받았으니 더 큰 은혜이다. 그러니까 소돔과 고모라 땅을 볼 때, 자기 안에 긍휼한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땅을 위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은혜로 충만해지니까, 그에게 몇 가지 분명한 특징이 나타난다.


1. 첫째가 적극적인 기도의 모습이다.


아브라함은 50명의 의인이 있어도 심판하실 것이냐고 물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아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 45명으로 낮춰서 말한다. 그것이 다시 40명으로, 30명으로, 20명으로 낮춰지더니, 10명까지 내려서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기준을 낮추는 청원을 하나님께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요구하는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의 요구에 응답하신다.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적극적인 기도가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적극적인 기도가 가능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그것은 그렇게까지 해도 된다는 친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간청하기 시작하는 구절이 23절이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이제, 아브라함은 자기가 섬긴 대상이 하나님이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서도,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갔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가까이 나아갔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친밀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신앙의 출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가? 신앙생활의 성공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 친밀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친밀감을 이루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여러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이고, 영적인 성공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에 성공했다는 말일까? 위대한 일을 해서 성공한 것일까? 그것이 아니다. 위대한 일은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들의 성공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2.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33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아브라함은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돌아간다. 이것이 중요하다.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받아들인다. 은혜가 없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의 노력과 생각과 주장이 통하지 않으면 분노하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은혜가 있는 사람은 받아들인다. 말씀을 받아들인다. 고통과 시련도 받아들인다. 왜 그런가? 모든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주재가 하나님이시고, 만물과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대로 응답하실 때도 있지만, 우리가 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응답하실 때도 있다. 왜 그런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아들여라. 수용하라.” 이렇게 응답하시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그렇게 대하시는 것일까? 그 해답이 렘 29장 말씀에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무슨 말씀이신가? 고통을 그대로 수용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나를 아프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하는 이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파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아파하면 어떻게 되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찾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나? 찾으면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도하면 응답하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부르짖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찾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3. 세 번째 특징은 건강한 영성을 지향하는 삶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아~ 롯아, 내 사랑하는 조카 롯아~ 무엇을 했느냐? 너는 거기 소돔에서 무엇을 했느냐? 왜 그 땅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의인이 하나도 없는 것이냐?’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헤어지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가족,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나? 나는 최소한 의인 열 명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하나님과 헤어졌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과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힘써 나갔다는 것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실패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사로잡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우리도 한결같이 그렇게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성도란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영혼에 더 관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고 기도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래서 영혼을 건강하게 다스려가야 한다. 이 악한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영혼을 건강하게 다스려야 한다. 모든 부정과 불평을 말씀을 사로잡아서 묶어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소망과 위로를 발견해야 한다. 그 말씀에서 힘과 위로를 발견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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