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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을 내어줄 때 주도적인 인생이 된다.



주도권을 내어줄 때 주도적인 인생이 된다.(창 31:17-24)


성경은 인생인 자기 마음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교훈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대로 이루어져 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라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목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사실을 철저하게 알려주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하나님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을 보면,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우선 야곱을 생각해보면, 그는 라반을 떠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고향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야곱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인다. 라반이 시기하고 질투하여 안색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도주를 계획한다. 20절,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여기서 “가만히 떠난” 것은 의도적으로 은밀하게 도주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19절 이하에 따르면, 야곱은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을 때 자기의 가축들과 식솔들을 모두 챙겨 은밀하게 도주한다. 당시에 목축하던 사람들에게는 양털을 깎는 일은 일 년 농사를 추수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몇날 며칠 계획을 잡고 모든 노예들과 가족들을 동원해서 해야 하는 큰 행사였다. 야곱은 그런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아주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자기의 소유를 모두 챙겨서 도망친 것이다.


다음으로 라헬을 생각해 보자. 라헬은 자기 집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서 달아났다. 드라빔은 여자의 모양을 하고 있는,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 우상을 말한다. 그런데 드라빔은 가족 수호신일 뿐 아니라 재산의 상속권을 입증하는 증거물이기도 했다. 드라빔을 소유한 자가 가장 큰 몫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었다. 또 한편으로 보면, 드라빔을 가진 자가 씨족의 지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니까 왜 라반이 드라빔을 찾기 위해 야곱을 쫓아왔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그런데 라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던 중에 죽게 되었다. 그리고 라반과 야곱은 서로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라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라반은 드라빔을 잃어버렸고, 틀림없이 야곱의 소행인 것이 맞다. 그런데 그는 결국에 드라빔을 찾지 못한다. 야곱을 만나서도 그의 재산을 몰수하고, 자식들을 꾸짖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라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한결같이 자기 계획과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자기 생각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야곱의 경우에는 결국에 라반에게 따라잡혔고, 라헬의 경우에는 애써 가지고 나온 드라빔이 무용지물처럼 되어 버리고 만다. 라반도 마찬가지다. 그는 야곱의 발걸음을 돌리지도 못했고, 드라빔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이제 야곱을 고향으로 떠나보내야 했고, 야곱의 가족이나 재산도 모두 야곱의 소유인 것을 인정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교훈과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인생이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대로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성도란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고 했다.


2. 주도권을 인정했으면, 하나님께 나를 맡겨야 한다.


인생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이 있고,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도는 그 주권과 때를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좋은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고, 열매가 맺어질 날이 오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과 섭리와 시간이 있는 법이다.


세상이 마치 사람들에 의해서 다스려진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야곱의 생애를 읽어 나가고 있는데, 야곱의 생애가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야곱은 본래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야곱은 그렇게 살지 못했다. 무엇이든지 야곱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마음을 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주도권을 행사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가장 최고의 지혜가 무엇일까? 믿고 맡기는 것이다. 나의 바램이나 소원, 나의 목적이나 방향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좋은 것임을 믿고 맡겨야 한다.


고난과 아픔과 어려움들이 있더라도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런 고통과 인내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믿음의 반석 위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때를 만나더라도, 그 속에 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 주권을 반드시 믿고, 여러분의 전부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3. 하나님이 성도의 인생을 세우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인생의 주도권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성도의 인생을 세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창 31:29절을 보면, 라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라반은 야곱에게 분노했고, 그를 해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런데 누구 때문에 야곱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는 것인가? 자기 딸들이나 손자들, 야곱과 관계하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 때문이다. 야곱을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인생을 세워가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울 때 성전 입구에 기둥을 두 개 세웠는데, 우편에 있는 것은 야긴이라 하고 좌편 것을 보아스라 했다. “야긴”은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이다. 성전을 온전히 세우는 첫 번째 기둥이 “야긴”이다. 성전을 온전히 세우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약점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부족한 점과 실수투성이의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져 간다.


우편에 “야긴”이라는 기둥이 있었다면, 좌편에는 “보아스”라는 기둥이 세워졌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성전을 들어갈 때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세우신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다. 성도의 인생을 세우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성도의 인생을 세워가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했다. 믿고 구하면서 기적이 상식이 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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